캐리 람 행정 수반 시민들에 '백기'… 중국입김 '범죄인 인도 법안'무기한 보류 선언

[해외이슈]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는 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폭도'로 몰며 버티던 홍콩 정부가 거리로 몰려나온 100만명 이상의 피플 파워에 굴복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밀어붙이던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100만명 시위로 맞선 홍콩 시민들에게 백기를 들었다. 캐리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 심의를 보류하고 향후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밝혀 사실상 '무기연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완전 철회는 아니다'라고 한 그의 발표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16일 검은 옷 차림으로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날 시위에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였던 지난 9일의 103만명을 웃돈 20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최 측이 밝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결국 이날 오후 8시 30분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을 사과한다"는 성명을 냈다.

홍콩 정부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 협약이 없는 중국, 대만, 마카오 등에 범죄인을 넘길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시민들은 "법 개정이 이뤄지면 중국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공산당이 좌우하는 중국의 법정에 합법적으로 넘겨지게 돼 홍콩의 정치·언론 자유가 무너질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홍콩 언론들은 캐리 람장관이 선전에 내려온 한정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났으며 중국 지도부는 홍콩 사태가 자칫 유혈 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달 말 일본 오사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무역 전쟁 타결을 위한 협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태 수습 쪽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홍콩 언론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16일에도 '항의'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오후 3시부터 홍콩섬 빅토리아 공원에서 입법회까지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주요 간선도로는 검은 강으로 변한 듯했고, 시민들이 외치는 '반송중(反送中·범죄인 중국 인도 반대)' '악법 철회(撤回)'구호가 빌딩 숲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시민들은 람 장관의 사퇴도 요구했다.

한편 15일 밤에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해 도심 빌딩에서 농성을 하던 30대 남성이 떨어져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 시위 사태 이후 첫 사망자였다. 사고 현장에는 많은 홍콩 시민이 찾아와 꽃과 촛불을 놓고 고인을 추모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캐리 람 장관은 사과 성명을 냈다. 하지만 그는 사퇴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