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어린이 몸 보여주자" 충격요법 제안 증가

정치·사회 순기능 있지만 망자·유족 존엄성 훼손 우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에서 총기규제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 희생자 사진을 공개하자는 요구가 나온다.

총기난사 빈발에도 보수진영의 반대 때문에 규제강화 가능성이 크지 않아 충격요법이라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30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희생자 사진 공개 목소리는 지난 24일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 사건 뒤 부쩍 커졌다.

범행에 사용된 돌격소총(휴대용 경기관총) AR-15의 해악을 사진으로 보여주면 규제 필요성이 체감될 것이라는 게 요지다.

AR-15는 전쟁에서나 쓸 법한 무기이지만 민간 총기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에 단골이지만 총기업계의 로비,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반대 때문에 규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존 우드로 콕스 WP 기자는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연방의원들에게 죽은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총기난사 사건을 5년간 취재해온 콕스는 어린이 몸이 고화력 소총에 어떻게 파괴되는지 보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산하 언론연구소인 다트센터의 브루스 샤피로 소장은 "고통이 담긴 충격적 사진이 때때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진 때문에 여론이 자극받아 정책이 바뀐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러시아 침공군에 살해된 우크라이나 일가족의 사진, 병원 폭격에 다친 임신부 사진 등은 서방의 개입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중해를 건너 피란하다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시리아 꼬마난민 쿠르디의 사진은 유럽의 난민 포용론을 자극했다.

NYT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흑백차별, 홀로코스트, 베트남전 등에서 인종주의, 독재, 호전적 대외정책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을 폭로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총기난사에 희생된 참혹한 어린이의 모습이 실제로 총기규제 정책에 영향을 미친 적도 있었다.

코네티컷주 뉴타운에 있는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2012년 12월 발생한 총기난사의 희생자 26명 중에는 어린이 노아 포즈너가 있었다.

포즈너는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범인이 부시매스터 반자동 소총으로 난사한 총탄 80여발 일부에 등, 팔, 손, 얼굴 등을 맞고 숨졌다.

그의 어머니는 장례식에서 대널 멀로이 당시 코네티컷 주지사에게 포즈너의 시신을 보도록 했다.

충격적인 장례식 뒤 코네티컷의 총기규제는 미국 전역에서 최고 수준으로 강화됐다.

멀로이 주지사는 참사를 회고한 서적에서 "기절할 것 같았고 상처를 보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썼다.

포즈너의 어머니가 아들 얼굴의 상처를 흰 천으로 가린 까닭에 주지사가 받은 충격은 그나마 덜했다.

참상의 사진 공개가 여론, 정책입안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유족이 반대하는 경우들도 있다.

샌디훅 사건의 유족들은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희생자 사진을 입수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착각해 주 정부에 차단을 청원했다. 현재 샌디훅 희생자 사진은 유족들만 볼 수 있다.

언론계는 시신이 공개되면 희생자 존엄이 훼손되고 유족이 추가로 상처를 받기에 균형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젤러니 코브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신임 원장은 "사진이나 영상이 정치적 효용이 있고 실상을 뚜렷하게 보여줘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데도 쓸모가 있을지라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정당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샤피로 소장은 "사진 공개가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행위인지,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려 논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인지 결코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까다로운 윤리적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텍사스 참사의 사진이나 동영상은 일절 언론이나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인들은 총기난사로 파괴된 기물과 사건 현장의 모습을 전하는 게 돌격소총의 심각성을 보여줘 총기규제 필요성을 체감하도록 하는 대안이 될 것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