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문가 "참의원 선거서 자민당에 '동정표' 가능성"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 영향력 약화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 우익의 상징적 인물이자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끄는 아베 신조(67) 전 총리의 사망이 일본 정치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 참의원 선거 유세 중단…자민당에 '동정표' 가능성

오는 10일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발생한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 사건으로 여야 주요 정치인의 선거 유세는 중단됐다.

우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있는 참의원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터지면 피해를 본 쪽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며 "일본에선 '동정표'라고 하는데 유권자들이 불행을 당한 쪽에 동정심을 가지고 표를 던져 자민당에 유리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2000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중의원 선거 기간 뇌경색으로 쓰려져 사망했을 때와 1980년 당시 오하라 마사요시 총리가 참의원 선거 기간 급사했을 때도 자민당이 동정표를 받아 승리했다고 오쿠조노 교수는 과거 사례를 전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선거 기간 있어서는 안 되는 주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 사건이라는 점에서 피해를 본 자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작년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승리하면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자민당 내 역학 관계 변화 가능성…"기시다 색깔에 플러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자민당 내 역학 관계에 변화가 예상된다.

그가 이끌어 온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아베파에는 '절대적 리더'인 그를 대신해 구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다. 아베파에 새로운 지도체제가 구축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구심력을 잃은 아베파의 힘이 약해지고 심지어 분열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전 총리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1985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다나카파'도 후계자가 없어 분열한 바 있다.

강경 우파인 아베파의 힘이 약해지면 전통적으로 온건파인 '기시다파'를 이끄는 기시다 총리에게는 자신의 색깔을 내는 여건이 나아질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파의 지원으로 당선돼 총리 취임 이후에도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살펴봐야 했다.

기시다 총리는 올해 초 한국이 강하게 반대했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보류하려고 하다가 아베 전 총리가 "(한국이) 역사전(戰)을 걸어 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압박하자 추천 쪽으로 선회한 바 있다.

아울러 기시다 내각이 지난달 각의에서 결정한 '경제재정 기본방침'은 애초 정부가 마련한 원안에는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한다"는 표현이 있었을 뿐 목표 기간은 설정하지 않았다. 각주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종안은 "5년 이내에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한다"고 명시하고 나토의 방위비 목표 서술을 각주에서 본문으로 옮겼다. '5년 이내 방위비를 GDP의 2%로 증액'하는 의지를 더욱 뚜렷하게 담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아베 전 총리의 입김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오쿠조노 교수는 다나카 전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을 계기로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다나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전례를 언급했다.

1982년 출범한 나카소네 내각은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 다나카파의 지지로 출범할 수 있었고 다나카 전 총리는 '상왕'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나카 전 총리가 건강 문제로 정치 활동을 못 하게 되면서 나카소네 당시 총리는 자신의 정치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고, 국영 기업 민영화와 세제 개혁 등의 정책을 밀어붙여 성과를 냈다.

작년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의 관계는 1980년대 '나카소네-다나카' 관계와 비교되곤 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다나카가 정정했다면 나카소네가 그렇게까지 마음껏 자신의 정치색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다나카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정치적 힘을 상실하게 되면서 나카소네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정책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정국에 미치는 영향 등은 지금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저 자신도 그런 점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쿠조노 교수는 "아베 전 총리의 힘이 강하고 현직 총리도 아베 전 총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아베라는 큰 압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정치색을 내는데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중에는 한일관계도 포함된다"며 기시다 총리가 강경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한일 관계에서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