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통 창구 닫고 고립 강화…계속 확장하는 나토와 대조적"

노벨평화상 수상 러 언론인 "푸틴, 서방과 갈등 커지는 것 반겨"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러시아가 외국 언론의 자국 내 취재 활동을 용인한다는 암묵적 금기를 깨고 미국인 기자를 간첩 협의로 체포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격화한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미국 국적자인 에반 게르시코비치(32)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한 조처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로 해석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 중 한 곳에 소속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가장 유명한 서방 기자 중 한 명을 체포한다는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러시아와 서방의 단절을 더욱 강화한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여러 외국 기자를 추방하고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시 검열법을 근거로 자국 기자들을 여러 차례 기소했지만, 미국 기자에게 간첩 혐의를 공식적으로 적용해 구금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이번이 첫 사례다.

NYT는 서방과 갈등을 겪는 중에도 서방 언론사에 계속 문을 열어두려고 했던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었다면서, 이전까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에도 자신의 메시지를 서방에 전달하려고 노력하면서 일부 공감을 얻을 것을 기대해왔다고 짚었다.

그런 까닭에 게르시코비치 기자를 체포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서방과 소통 창구를 닫음으로써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결별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일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NYT에 "공개적인 대립의 시대가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라토프는 미국과 냉전을 벌인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지도자들조차도 인권 탄압에 관한 서방의 비난을 피하려 했지만, 소련의 후신을 자처하는 현 러시아 정부는 전 세계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올 것을 알면서도 게르시코비치 기자를 체포했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러시아 정부는 "우리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라며 서방과 갈등이 커지는 것을 반기는 모양새라고 무라토프는 강조했다.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군사적 중립을 지키던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등 서방 군사동맹이 확장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갈수록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전쟁 이전인 작년 초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정부가 허위 정보 등을 이용해 서방 여론을 움직이려는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주류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인 기자 체포는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가 핵 위협과 함께 서방의 대러제재에 대응해 보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러시아 시장에 진출했던 서방 기업들도 대거 사업을 철수하며 러시아와의 단절을 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유럽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또는 나토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재정적 원조를 제공하며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 의회가 핀란드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가결하면서 나토는 다음 주 중 핀란드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적 중립을 포기한 스웨덴도 나토에 가입 신청을 낸 채 30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폭스뉴스에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은 푸틴이 원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라며 "그는 더 작은 나토를 원하지만, 나토를 더 크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