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국가 공고화 위해 분열된 세계질서 이용"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 등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국제적 위협을 키우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세계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북한은 더 큰 위협이 됐다"며 북한이 핵무기 확장, 러시아와의 유대관계, 남한과의 평화통일 목표 포기를 통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WSJ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그 독재자는 북한을 위협적인 핵 국가로서 공고히 하려고 분열된 세계 질서를 이용해왔다"며 세계가 유럽과 중동에서 이른바 '2개의 전쟁'에 휘말린 상황을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장기화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집중하면서 북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느라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점이 과감한 북한 행보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4∼2015년 북핵 6자회담의 미국 특사로 활동한 시드니 사일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활동에 대한 미국인들 사이의 약해진 지지가 미국이 무리하고 지쳤다는 인상을 김정은에게 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WSJ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점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김 위원장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노딜로 귀결된 이후 핵무기로 더 길고 전략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과거에는 무기와 관련한 활동 중단을 국제사회에 약속함으로써 국제적 입지를 높이고 대외 지원을 받거나 제재를 완화하려고 했다며 "김정은은 그 관례를 버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 김정은은 설령 제재 아래 사는 것을 뜻하더라도 핵무기 유지에 방점을 두고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북한은 외교적으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WSJ은 김 위원장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미 협상을 포기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구애가 과거보다 북한 문제의 국제적 심각성을 한차원 높였다고 평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작년 9월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관계 발전에 뜻을 모았다.

그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산 포탄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북러 간 무기 거래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고조됐다.

미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 켄 가우스는 "김정은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남정책에서도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비롯한 대남기구를 정리하는 사업에 나섰고 김 위원장은 한국을 '주적'으로 거칠게 비난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끌어올렸다.

WSJ은 북한이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과 한국 당국자들은 드론(무인기) 침투나 해상 공격 등 소규모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