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영웅→금전 혜택' 광고 문구 변화

우크라 러 본토 공격 이후 시민들 막연한 불안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지하철역. 교통카드 키오스크에서 군인들이 담긴 포스터가 화면에 떴다. 군 입대자를 모집하기 위한 광고다.

광고는 파격적인 금액을 내세웠다.

"모스크바에서 계약을 맺고 군복무하면 모스크바시와 국방부의 지급금을 합해 첫해 520만루블(약 7천5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모스크바 거리에 이런 광고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모병 광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버스 정류장, 도로변, 대형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보이는 곳이면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다.

러시아는 3년째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필요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자원입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가을 부분 동원령으로 혼란을 겪은 이후 추가 동원 계획은 없다고 약속한 대신 모병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요즘에는 주택가의 작은 식료품 가게 유리창에서도 이런 광고가 발견된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기념품 가게 옆에도 입대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터가 붙었다.

눈길을 끄는 건 광고 내용의 미묘한 변화다.

지난 겨울 쇼핑몰에 붙었던 한 모병 광고에는 '우리의 직업은 조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로변 대형 광고판에는 현역 군인의 얼굴·이름과 함께 '승리는 우리 것', '러시아의 영웅들에게 감사하다'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국을 위해 싸우는 자긍심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광고가 많았다면 요즘은 "계약하면 일시불로 230만루블(약 3천300만원) 지급"과 같은 '실용적 카피'가 늘었다.

모스크바의 한 대학에 다니는 20대 남성 안톤은 "군 계약 공고를 하루에도 여러 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슈퍼마켓 입구"라며 광고를 통해 계약 체결에 대한 지불금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반대로 2022∼2023년 자주 볼 수 있었던 전사자 추모 포스터는 요즘 그 수가 몇 배로 줄어든 것 같다"며 "마치 시민들에게 전투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입대자에 대한 혜택이 최근 후해진 것도 사실이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지난달 23일 군 복무 계약을 하는 시민에게 일회성 지원금을 확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그 덕분에 모스크바 출신 계약 군인은 시, 연방 정부, 국방부 등이 제공하는 지급금을 모두 합해 첫해 520만루블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는 러시아 전체 평균 명목 임금의 5배가 넘는다.

하지만 안톤은 파격적인 금전 혜택이 군 지원에 큰 유인이 될지는 의심스럽다는 눈치였다.

"돈 버는 게 목표인 사람은 이미 1년 전에 계약서에 서명하고 전장에 나갔어요. 다른 사람은 대부분 일상과 사회·경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선보다 요즘 러시아 본토가 공격받은 데 더 관심이 있는 분위기다.

지난 6일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남서부 접경지 쿠르스크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면서 전투가 러시아 땅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어린 징집병이 전투에 투입됐다는 보도들도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는 봄·가을 18∼30세 남성을 대상으로 복무 기간 1년의 정규 징집을 한다.

아직 모스크바 시민들은 국경지대인 쿠르스크 전투를 생생히 체감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아르바트 거리는 거리공연을 감상하거나 거리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맡기는 관광객으로 북적였고 동물원은 나들이객으로 가득 찼다.

지난 21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에 대한 최대 규모 드론 공격을 시도했지만 인명 피해가 보고되지는 않았다.

시민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까지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했다.

20대 여성 알료나는 "동원령이 발령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며 "그런 소문은 늘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라도 남자친구가 군에 갈 수 있으니 그 전에 함께 여행을 가자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