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 56석 감소 등 '사실상 참패'…조기퇴진 압박 속 '식물 총리' 전락할 수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집권한 지 약 한 달 만에 중의원 선거(총선)를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여당의 과반 의석 수성 실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
1986년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4전 5기 끝에 당권을 거머쥐었고 이달 1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에 이어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내각 교체 시 지지율이 상승한다는 이른바 '허니문 효과'를 노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취임한 역대 총리 중 최단기간에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을 단행했다.
본래 내각 출범 직후 총선 실시에 부정적이었던 기존 입장을 바꾼 셈이다.
이시바 총리는 오랫동안 '자민당 내 야당'이자 비주류로 활동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례적 조기 총선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야당으로부터 '변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대변혁을 과감히 실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임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조기 총선을 정당화했다.
이시바 총리는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이나 미일지위협정 개정 등 이전부터 주장해 왔던 안보 정책 추진을 보류하고, 기시다 정권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이시바 총리는 반대파를 포용하는 융합을 염두에 두고 작년 연말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들을 공천하려 했다.
그러나 비자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심상치 않자 12명을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고, 34명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불허하기로 했다.
선거전 초반만 해도 자민당·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후반에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여당의 과반 의석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다.
이시바 총리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과거에 했던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는 발언을 유세 현장에서 하고, 약진이 예상되는 입헌민주당을 향해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일본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자민당 본부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하지 않은 출마자가 대표를 맡은 당 지부에 '활동비' 명목으로 2천만엔(약 1억8천만원)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선거 직전인 23일 알려지면서 민심 이반이 가속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이 돈에 대해 '이면 공천료'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도 "반성하고 있다"며 마이너스 요소가 됐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시바 총리의 조기 총선 '승부수'는 자민당 의석수를 56석 줄이고 유권자의 분노만 확인한 '자충수'가 됐다.
이시바 총리는 다른 야당을 포섭해 연정을 확대하거나 사안별로 일부 야당과 협력하는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같은 구상이 차질을 빚으면 '식물 내각'의 책임자로서 퇴진 압박에 직면하는 풍전등화 신세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협력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민민주당과 협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면서 "당내에서 (이시바 총리) 퇴진론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 중견 참의원(상원) 의원은 이시바 총리의 책임이 커 계속해서 총리직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시바 총리가 20∼30%대 수준인 내각 지지율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올리지 못하면 '이시바 끌어내리기'를 버티지 못하고 '단명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