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韓사태 계기 미국 제도 조명…"계엄령 없지만 시민 권리 제한 가능"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의 계엄 사태 및 그에 따른 후폭풍과 맞물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미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주목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WP는 3일(현지시간) '한국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헌법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국의 상황은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고 짚었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에는 한국과 같은 형식의 '계엄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주를 통할하는 주지사에는 계엄 선포 권한이 있지만, 대통령에게는 해당 권한이 없다는 것이 다수 법률 전문가의 견해다.
미 코넬대 교수인 데이비드 알렉산더 베이트먼은 "미국에는 실제로 계엄령은 없다"고 말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국가안보 전문가인 레이철 클라인펠드도 만약 미국이 계엄에 처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완전히 중지되는 것이므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민의 자유를 제한해 계엄령과 비슷한 효과를 꾀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일부 존재한다.
우선 '헤비어스 코퍼스'(인신보호청원)를 중지하는 것이다. 헤비어스 코퍼스는 구속·구금된 개인이 왜 신체적 자유를 제한받는지에 대한 법원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권리다.
미국 헌법은 '반란·침략 시 공공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헤비어스 코퍼스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해 헤비어스 코퍼스를 중단한 바 있다.
아울러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을 발동할 수도 있다. 이 법은 대통령이 비상사태 시 법 집행을 위해 군대를 소집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이때 소집된 군대는 평시의 범위를 넘어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WP는 짚었다.
또한 주방위군을 동원해 거리의 시위대 등을 해산할 수 있다.
실제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짓눌려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에서 반(反)인종차별 시위가 촉발됐을 때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워싱턴의 시위대 해산을 위해 방위군을 투입한 바 있다.
이같은 권한들은 미 의회의 과반 투표를 통해 상당 부분 무효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야당이 다수당인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내년 의회는 트럼프에게 점점 더 충성을 다하는 공화당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WP는 짚었다. 이는 지난 달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한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법원이 대통령이 이런 권한들을 남용할 시 신속히 저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WP는 관측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보수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돼 확고한 보수 우위 구도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헌법학 교수인 조시 차페츠는 "대통령이 진정으로 독재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관건은 연방정부와 군대, 기타 법 집행 기관이 그것을 기꺼이 따를 것인지 여부"라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의회나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