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헌법에는 계엄 조항 없어…'긴급사태 조항' 도입 둘러싸고 찬반 갈려
日신문들 '내일 탄핵안 표결' 보도…"여당 결속해 저지할지가 초점"
일본에서 이웃 나라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접하고 민주주의 의미와 현실을 곱씹으며 경각심을 품는 시민들이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거주하는 50대 여성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중계를 계속 지켜봤던 심야를 잊을 수 없다"고 적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한밤에 계엄을 선포한 직후 한국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나가타초로 달려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나가타초는 총리 관저와 국회가 있는 일본 정치 중심지다.
한 20대 일본인은 일본에서도 선거 때마다 헛소문과 비방이 난무해 민주주의가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에 한국 계엄 사태 소식을 듣고 "민주주의는 간단히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 거주하는 60대 일본인은 "한국에는 심각한 분단과 냉소가 있지만, 탄압과 저항의 역사를 통해 독재자가 군을 움직이는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공통 인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신문에 말했다.
아사히는 "일본 헌법에는 (한국과) 동일한 (계엄) 규정은 없고 정치 체제도 크게 다르지만, (한국 상황을) 자신의 생활과 겹쳐 보며 자문자답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계엄 규정이 제국 시대 만들어진 메이지 헌법에 있다가 사라졌지만, 한국 계엄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유사시 정부에 권한을 집중시켜 시민 권리를 제한하는 '긴급사태 조항'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집권 자민당은 지난 9월 결정한 개헌 쟁점 정리안에서 대규모 재해나 무력 공격, 감염증 만연 등을 '긴급사태'로 규정하고, 긴급사태 발생 시 정부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긴급 정령을 국회 의결 없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사회민주당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는 지난 4일 엑스에 "계엄령도 자민당이 만든 긴급사태 조항안도 민주주의를 파괴해 국회를 무시하고 없애려는 것"이라고 적었다.
반면 자민당과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 등 개헌 지지 세력은 긴급사태 조항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개헌파 의원 수가 이전보다 줄어들어 일본 내 헌법 개정 동력은 약화한 상황이다.
한편, 산케이신문은 계엄 사태로 인해 한국 외교·안보 일정에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 역할 수행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산케이는 "내년 초부터 APEC 관련 회의가 시작돼 가을에는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라며 "한국 정계 혼란이 이어지면 의사 운영에 영향을 줘 한국의 메시지 발신 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일본 조간신문 대부분은 이날 1면 기사 등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7일 오후 7시께 이뤄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은 "윤석열 정권을 뒷받침한 보수계 여당 국민의힘이 결속해 소추안 가결을 저지할 수 있을지가 초점"이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여당이 단결해 반대하면 윤 대통령은 탄핵을 면하고 정권은 지속된다"면서도 "계엄령 선포로 여론 반발이 강해지고 있어 탄핵안이 부결되면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도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윤 대통령 사임, 탄핵소추안 가결과 부결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한국 정계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권력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설했다.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