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에 한명' 오랜 전통 개의치 않고 현직 준하는 행보
과거엔 현직 존중해 당선인이 몸 낮춰…미 민주당선 바이든 침묵에 분통도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 기념식에서 수십명의 정상급 참석자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의 사이에 트럼프 당선인 자리를 마련해 극진한 예우를 표했다. 취임까지는 40여일이 남았으나 국제무대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브리지트 여사 옆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재(不在)를 더욱 실감케 하는 자리 배치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파리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고 반군이 수도를 장악하며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시리아 상황에 대해 공개 언급을 하며 사실상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워싱턴DC에 머무르면서 일요일인 8일이 돼서야 시리아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한 바이든 대통령과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국제무대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은 한 번에 한명'이라는 오랜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연일 논란을 마다하지 않는 파격적 인선으로 미국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한편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정책 발표로 미국 안팎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 것이다.
'25% 관세 압박'으로 가까운 동맹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자신의 플로리다주 저택 마러라고로 사실상 불러들이며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귀환을 전 세계에 생생히 확인시키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는 이미 취임 40여일 전부터 워싱턴의 어젠다를 장악하고 있으며 자극적 인선과 정책 발표로 이목을 잡아채고 있다. 외국 정상과의 힘겨루기도 시작했다. 미국인 다수에게 그는 이미 대통령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가 현직 대통령을 존중하며 취임까지는 몸을 낮추는 관행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했다.
래리 사바토 미 버지니아대 교수는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등이 대통령 당선인 시절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여전히 현직 대통령인 전임자를 방해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기세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거의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현직 미국 대통령 중에서는 처음으로 앙골라를 방문했으나 기사도 거의 나지 않았고 백악관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조회수가 2천회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 차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차남 헌터 바이든에 대한 사면을 단행해 비난받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대통령은 한 번에 한 명인 것이 미국의 전통인데 지금은 바이든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내주면서 트럼프가 대통령 같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어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권 이양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에 맞서 선명한 목소리를 내며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 기회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 왈리드 샤히드는 WSJ에 대부분의 유권자는 논란이 되는 내각 후보자들을 모른다면서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하면 많은 이들이 알게 될 것이고 '관심의 전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유권자들에게 가서 설명하는 것뿐인데 바이든은 계속 이를 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