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기준금리 인하에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금융통화정책에서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친(親) 가상화폐 대통령'을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에 상승세를 이어가던 비트코인 가격도 이날 연준은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 이후 급락했다.
◇ 파월, 금리 속도조절 시사…저금리 선호 트럼프와 충돌하나
연준은 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내년 금리 인하 전망치는 대폭 줄이는 '매파적 인하'를 단행했다.
9월 당시 점도표(연준 인사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서는 내년 금리 인하 횟수를 0.25%포인트씩 4차례 정도로 봤지만, 이번에는 2차례 정도로 줄인 것이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연준의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은 2.1%에서 2.5%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2.0%에서 2.1%로 올라갔고 실업률 전망은 4.4%에서 4.3%로 낮아졌다.
고용시장이 탄탄하고 경제 성장세가 견조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진정되지 않으면서, 금리 인하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본 것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성명서에 들어간) 금리조정 '폭'(extent)과 '시기'(timing)라는 표현을 통해 금리 추가 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년 1월 28∼29일 FOMC 회의를 며칠 앞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저금리를 선호하며 본인 판단만큼 금리가 낮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이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는 게 블룸버그 설명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향후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 최근 달러 가치가 오르고 있는 만큼, 관세를 통해 대유럽 수출을 늘리려 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에 강달러가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트럼프 효과' 비트코인, 파월 발언에 10만달러 '위태'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대표적 '트럼프 트레이드' 자산으로 꼽혔던 비트코인은 이날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 여파로 급락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 등의 발언을 내놨고 가상화폐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비트코인 비축'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은 기대감을 키워갔고, 가상화폐 규제에 앞장섰던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후임으로 가상화폐 친화적 인사를 임명한 것도 호재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초 7만달러를 밑돌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달 들어 10만 달러 선을 넘은 데 이어 최근 10만8천 달러선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이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에 대해 연준이 관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리(연준)는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다"고 밝혔고, 비트코인 비축을 위한 제도 마련에 대해서도 "의회가 고려할 사안으로, 연준은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트코인은 연준이 검토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으며, 연준 인사들은 대체로 가상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는 평가도 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한때 10만150달러까지 떨어졌고, 한국시간 오전 10시 4분 기준 24시간 전 대비 5.41% 내린 10만593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 파월 임기는 2026년까지…트럼프 "해임 계획 없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기 때 지명했지만,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8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를 비판했고 이듬해에는 파월 의장을 의장직에서 강등하거나 아예 해임할 권한도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재임 기간 연준이 금리를 낮추지 않아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곤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기간인 지난 9월 연준이 0.50%포인트 빅컷을 단행하자 이는 집권 민주당에 유리하게 하기 위한 '정치 행위'라고 비판했고, 파월 의장은 선거 등 경제 이외의 요인은 연준 정책 결정과 무관하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해도 임기 전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연준에 '그림자 의장'을 임명해 파월 의장의 임기 종료 전 레임덕을 만들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은 이달 8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에게 사퇴를 요구할지에 대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까지다.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bs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