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계속되는 '노쇼'에 요식업계 시름 깊어져

외식업주 10명 중 8명 "최근 1년간 노쇼 경험"

"노쇼는 선택 아닌, 경제 피해 유발하는 무책임한 행동"

"예약 취소를 하면서 미리 전화라도 해주면 다행이고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바쁜 와중에 일일이 확인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이제는 체념해서 항의 전화도 안 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백숙집 사장 A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주변에 직장이 많아서 단체 예약이 종종 잡히는데 한 달에 대여섯 팀은 예약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숙은 2시간 전부터 조리해야 하는데 갑자기 예약을 취소해버리면 만들어둔 음식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님이 갑자기 예약을 취소하거나 연락도 없이 당일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no-show·예약 부도) 때문에 식당 주인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음식점·카페·제과점 등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경제 불황으로 손님이 줄어든 상황에서 노쇼 피해가 고통을 더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예약을 앞두고 준비한 식재료를 전부 버려야 하는 상황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5년간 고깃집을 운영해 온 B씨는 지난 13일 20명 단체 예약 노쇼를 겪었다.

어떤 사람이 '네이버 예약' 플랫폼을 통해 오후 6시에 20명 예약을 걸어 놓고는 당일 오후 6시 15분께 못 가겠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

B씨는 전화통화에서 "고기를 초벌로 구워 놓고 방에다 인원에 맞게 세팅을 다 해놨는데 일찍 나와 준비한 직원들만 헛수고했다"면서 "더 괘씸한 것은 네이버 예약 채팅에서 더 이상 연락을 할 수 없게 계정을 차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나중에 다시 연락이 와서 보상금을 받긴 했지만 꼭 금전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하루 장사를 망치는 기분이 들어 정신적으로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대학가 인근 식당 주인들은 학과·동아리·단체 등 뒤풀이 행사가 몰리는 신학기에는 단체 예약을 받기도 겁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대학 주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매장 전체를 대관하다시피 예약을 하면 하루치 매출을 보장해 줘야 하는데 행사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예약을 취소하거나 지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소비자를 믿고 예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노쇼 피해를 호소하면 식당이 예약금을 받지 않은 것도 잘못 아니냐는 말이 돌아온다"며 억울해했다.

지난달에는 외식업주 10명 중 8명이 노쇼를 당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작년 11월 국내 외식업주 150명을 대상으로 음식점 노쇼 관련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8.3%가 '최근 1년간 노쇼를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또 내수 침체 속 손님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예약 보증금제를 시행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봐도 보상금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예약 보증금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9.4%에 그쳤다.

아울러 응답자의 85.5%가 노쇼에 따른 피해 보상금을 고객에게 청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음식점 이미지 손상 우려'(23%)가 가장 많았고 '연락 두절'(20.3%), '동네 장사라서'(17.6%), '재방문하지 않을까 봐'(13.5%)가 뒤를 이었다.

이경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심지어 일부 고객은 여러 음식점을 예약하고 실제론 한 곳만 방문한 뒤 나머지는 고스란히 노쇼 하는 식으로 '예약 쇼핑'을 한다"면서 "소규모 식당은 예약금을 요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요즘 보증금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연회 시설을 제외한 외식업장에서 예약 시간 1시간 전까지 취소하지 않으면 총 이용금액 10% 이내의 예약보증금을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다만 이는 분쟁 해결을 위한 합의·권고 기준일 뿐 강제성이 없고 다양한 노쇼 상황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군 간부를 사칭해 단체 주문을 한 뒤 노쇼 한 데 따른 피해가 속출해 요식업계를 긴장시킨다.

지난 18일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제주시 삼도동에서 5년째 빵집을 운영해온 C씨는 해병대 9여단 간부라고 밝힌 남성으로부터 녹차 크림빵 100개를 주문받아 준비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

앞서 작년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군 간부를 사칭해 '노쇼' 범죄를 일으키는 사건을 전국적으로 76건 확인했다면서 광역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인식 개선이 노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노쇼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면서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함께 상생하는 바람직한 예약 문화가 조성되어야 예약 준수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예약 보증금 제도 외에 예약 상기 시스템과 인센티브 부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예약 시간 전에 문자, 카카오톡, AI 챗봇 등을 통해 예약을 상기해주는 시스템만으로 노쇼율이 크게 감소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약 약속을 성실히 지킨 고객에게는 다음 방문 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 '예약 이행률'이 높은 고객에게 우대 혜택을 제공하면 예약 준수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ku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