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기원전 399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시기 직전에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사회가 합의한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승복의 대명사로 쓰이지만, 정작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Dura lex, sed lex)에서 왔다고 한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자신의 저서 <법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쓴 데서 와전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한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의 '승복 연설'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는 "우리가 원한 결과가 아니고, 우리가 목표로 하고 싸워온 결과가 아니며, 우리가 투표하면서 목표한 결과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이 원칙은 다른 원칙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군주제나 독재와 구별하게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반해 4년 전인 2020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변호사들과 함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 등 경합주에서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거나 재검토하기 위해 다수의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들은 대부분 기각됐다. 트럼프는 이후 불복 선동 연설을 하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트럼프의 불복 연설에 자극받은 지지자 수천 명은 의회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이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의회에서 선거 인증 절차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길어지면서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간 대립과 반목도 심화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과 헌재 인근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정례화됐다. 탄핵 찬반 집회에서는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와 혐오, 가짜뉴스가 난무한다. 정치인 살해 협박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헌재 결정 이후 국내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치적·사회적 아노미(anomie) 현상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와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극심한 여야 대립과 국론 분열 속에 국가 기능이 사실상 정지된 모양새다.
향후 헌재의 선고를 계기로 혼란을 수습하려면 정치권과 시민 모두 냉정함을 되찾고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자 헌법 수호의 책무다. 헌재는 단심제여서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되돌릴 수 없다. 여야 지도부가 최근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이 시점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헌재 결정 승복 약속이 절실히 요구된다. 두 사람의 승복 약속이 헌재 선고 이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