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25% 상호관세 조기 해소 목표…트럼프 '방위비 연계' 가능성 변수
美中 '치킨게임' 향배가 분수령…주가 하락 등 미국내 상황도 중요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80여개국에 세율을 차등 적용하는 '상호관세'가 9일(미국 동부시간) 0시 1분을 기해 발효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관세전쟁은 '루비콘강'을 건넌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 해소 등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세계 자유무역의 틀은 유지되는 길로 가게 될지, 아니면 미중간 충돌 속에 전세계적 '관세전쟁'이 촉발되며 자유무역 체제가 보호무역 체제로 급속히 전환할지 등 양 갈래 길의 기로에 선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5일부터 전세계 교역 상대국에 10%의 기본관세(보편관세)를 부과했다. 이날부터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해서는 기본관세율(10%) 이상인 상호관세로 기본관세를 대체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는 기본적으로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미 25% 관세가 부과된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자동차의 경우 상호관세 25%가 추가로 가산되지 않고 기존 관세가 유지된다.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 일부 품목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예고된 상황이어서 아직 '트럼프발 관세' 공세는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주된 전쟁터는 미측이 각국과의 협상 여지를 열어둔 이번 상호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7∼8일 정상간 통화를 통해 신속하게 움직인 한일을 비롯해 다수 국가는 일단 미국과의 협상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미측이 거의 70개국 가까이 자신들에게 연락해 왔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8일 CNN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맞대응 않고 협상할 것"이라며 "기업이 타격을 받기 전에 한미 양국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팀에 국가별 '맞춤형 관세 협상'을 지시하면서 동맹국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6월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한미간 대면 정상회담을 통한 포괄적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은 핸디캡이 있지만 신속히 협상에 임함으로써 상호관세를 조기에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양상이다.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등을 통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고 조선, 반도체 등 한국에 장점이 있는 영역에서 미국과의 산업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관세 폭풍을 넘어서겠다는 기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덕수 대행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협상 희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른바 '원스톱 쇼핑'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한국 입장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 측이 방위비 분담금과 관세 문제를 연계할 경우 경제를 넘어 안보 영역에까지 걸친 포괄적 합의를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 미국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한미간에 2026년부터 적용할 차기 방위비 분담 협상을 타결한 상황은 이 같은 논란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로서는 상호관세를 둘러싼 협상의 범주를 무역과 산업 영역으로 국한하는 방향으로 대미 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보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나선 중국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모은다.
무역 자유화 시대의 국제 분업체계에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추는 쪽을 택한다면 이번 관세전쟁의 통제권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형국이었다.
중국까지 굴복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경제에 미치는 관세의 영향을 고려해가며 상호관세 감축과, 상대국의 양보 카드 중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운동장'을 만들면서 세계 자유무역 질서가 깨지는 '파국'은 피하는 연착륙을 모색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상호관세율과 같은 34%의 맞불관세를 택한 데 이어, 그것을 취소하지 않으면 50%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일단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이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 국면으로 들어갈 경우 우선 숨 막히는 전략경쟁 속에서도 미중이 물리적으로 충돌하기 어렵게 하는 '범퍼'로 평가받아온 양국 간의 긴밀한 경제적 연계가 빠르게 침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또 미국의 관세 장벽 앞에 막힌 중국산 제품들이 저가로 전세계 시장에 쏟아질 수 있는데, 그것은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큰 국가에게는 미국발 관세에 버금가는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아울러 '저항'의 대열에 중국뿐 아니라, 신중 기조를 보이고 있는 유럽연합(EU) 등도 가세할 경우 본격적인 글로벌 무역전쟁의 개전과 함께, 자유무역 질서는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에 대한 파장을 인식한 듯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우리는 그들(중국)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이번 '관세전쟁'을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싸움'으로 간주할 경우 미중 간 조기 타협이 쉽지 않을 수 있어 보인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전임자들의 '10년 집권' 관례를 깨고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는 시 주석은 그간 미국을 포함한 서방에 맞설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자국민에게 확산해왔다.
그런 그가 트럼프 재집권 2개월여만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삼키기 어려운 '쓴 잔'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도 미중 양국은 1차 무역전쟁을 치른 바 있다.
2018년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무더기로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에 시동을 걸었고, 결국 양국이 서로 관세와 보복관세를 주고받다 2020년 초 1단계 무역 합의라는 미봉책에 합의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합의 이행이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해 폭넓은 관세 예외를 적용하고, 중국은 미국산 제품 2천억 달러 상당을 구입하는 '거래'에 양측이 합의했다.
지금도 양국 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분리) 비용을 감안해 합의를 모색할 동인은 미중 모두에게 있지만 양국 정상 주변에 '다른 목소리'를 낼 참모가 1차 무역전쟁 때보다 크게 줄었다는 점,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간 본격적 소통 채널을 만들기 전에 무역갈등이 불거진 점 등은 변수로 거론된다.
이와 함께 상호관세의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 및 인플레이션 악화 우려 속에 미국 증시가 하락 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변수로 거론된다.
시간이 마냥 트럼프 대통령의 편인 것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