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본토 깊숙이 대규모 무인기 공격…전쟁 판도 뒤흔들어
BBC "대담하고 독창적, 대단한 선전 효과"…WP "전쟁규칙 다시 썼다"
우크라이나가 1일(현지시간) 러시아 본토에 가한 대규모 무인기(드론) 공격은 전쟁의 판도를 다시 한 번 흔드는 깜짝 기습으로 평가된다.
특히 러시아와의 2차 직접 협상 직전에 가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심리적 부담감을 키우는 동시에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도 견제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격이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수준의 충격을 주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날 러시아 본토 공군기지 4곳을 드론으로 공격해 초음속 가변익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160을 비롯한 40여대의 러시아 군용기 약 70억 달러(약 9조7천억원)어치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거미집'으로 명명한 이번 작전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눈을 피해 소형 드론을 러시아로 보낸 후 화물 트럭으로 위장한 차량에 보관했다. 그 뒤 드론을 수천㎞ 떨어진 별도 장소로 이동시킨 후 근처 러시아 공군기지를 겨냥해 원격 발사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러시아 공군기지 2곳을 타격하는 장면이라고 자체 확인한 영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에는 최북서단 도시인 무르만스크의 올레냐 기지에서 전투기 여러 대가 불타는 장면 등이 담겼다.
이 밖에 이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서부 브랸스크주와 쿠르스크주에서는 교량 2개가 잇따라 폭발로 붕괴해 최소 7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러시아는 이 사고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하고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영국 BBC 방송은 우크라이나 측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면, 러시아 공군 기지를 겨냥한 이번 드론 공격이 2022년 2월 러시아와의 전쟁 시작 뒤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가장 정교한 작전이라고 평가했다.
BBC는 우크라이나의 작전이 대담하고 독창적이었다며 이 공격으로 7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검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눈부신 선전 효과를 거둔 대성취인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 전문가 세르히 쿠잔은 한 우크라이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의 어떤 정보 작전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이들은 전략 폭격기 120대 중 40대를 공격했다. 이는 놀라운 수치"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 블로거 올렉산드르 코발렌코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피해 규모가 너무 커서 현재 상태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피해가 복구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안보 전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이번 우크라이나의 작전을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비견했다.
그는 이날 기고문에서 일본이 과거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던 하와이를 공격해 "항모가 해군 전력의 중심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며" 전쟁의 규칙을 다시 썼다면 우크라이나도 이날 공격으로 "전쟁의 규칙을 다시 썼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최고 사령부도 1941년 미국인들만큼이나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이날 공습은 유인 전투기와 같이 한때 지배적이던 무기 체계가 구식이 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주만 공습에 빗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군사 블로거들도 이번 공격을 '진주만 공습'으로 묘사하며 자국군에 전술핵 공격을 포함한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전했다.
이번 공격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휴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압박하는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자국을 '패배자'로 가정하며 마치 러시아에 대한 항복의 조건을 조율하는 것처럼 협상을 중재한다는 불만을 가져왔다.
특히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이며 "당신에겐 (협상)카드가 없다"고 윽박지르던 장면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반감을 샀다.
우크라이나 시사잡지 '비즈니스 우크라이나'는 엑스(X·옛 트위터)에 "결국 우크라이나에도 몇 가지 카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자국의 공격에 자랑스러워했다.
우크라이나의 국방 전문 기자 일리야 포노마렌코 역시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것은 우크라이나가 '당신은 카드가 없다', '러시아는 질 수 없다, 평화를 위해 항복하라'라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돈바스 전선에서 느리게 끊임없이 밀리고 있어도, 우리의 가능성을 쉽게 깎아내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짚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