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태', 고수익 미끼 범죄 주의 환기
'시민덕희'·'모범택시'·'범죄도시' 등서 조명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며 유인해 납치·감금
"콘텐츠는 사회 비추는 거울…해결 해야 할 과제 짚어"
## 대학생 재민은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현지에서 납치·감금된 채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삼엄한 감시에 탈출은커녕 한국에 있는 가족까지 위협당하는 상황에 내몰리자 재민은 자신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쳤던 피해자 덕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수천만원 피해를 안긴 덕희에게 조직 몰래 다시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정말로 나가고 싶어요"라고 애원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의 내용이다.
2016년 실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해 화제를 모은 이 영화에서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타국으로 건너갔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발이 묶여 나락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현지 범죄조직에 의해 한국인 대학생이 고문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가운데, 고수익 아르바이트·일자리를 미끼로 한 범죄를 경고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다시 주목받는다.
동시에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의 '어제'를 쫓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보다 위험할 수 있는 '오늘'에 대한 경고등을 켠다.
2022년 1천200만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 '범죄도시2'에서도 유사 범죄를 다뤘다.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와 강력반장 전일만(최귀화)은 베트남 공안에 자수한 한국인 범죄자를 데려오는 단순한 임무를 맡아 베트남에 갔다가 자수 배경에 한국인 납치와 살인을 서슴지 않는 강력한 악당이 있음을 알게돼 추격을 시작한다.
또 영화 '보이스'(2021)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덫에 걸려 모든 것을 잃게 된 서준(변요한)이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중국에 있는 본거지에 잠입, 보이스피싱 설계자 곽프로(김무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배우 변요한은 '보이스'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중 어머니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볼 뻔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보이스피싱이 우리 가족까지 가까이 왔다고 느꼈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끔 배우로서 자부심 들 때가 있는데, 많은 분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절실함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SBS TV 드라마 '모범택시'(2021)에서는 조선족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조와 위험성을 다뤘다. 고수익 일자리에 속아 온 사람들이 감금된 채 폭력을 당하며 범죄에 가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들 콘텐츠는 저마다 화제 속 인기를 끌며 관련 범죄에 대한 주의를 환기했지만 현실에서 피해자는 이어지고 있다. 이에 범죄자들의 유인책과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캄보디아만 놓고 봐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현지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는 2021년 4건, 2022년 1건이었으나 2023년 17건을 기록한 뒤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8월까지 330건으로 다시 크게 늘었다.
관련 범죄도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불법 도박사이트, 공갈·협박, 마약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평범한 주부가 생계를 위해 마약 판매에 나서는 이야기까지 지상파 드라마에 등장했다.
지난달 시작한 KBS 2TV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은 착하고 성실한 주부 은수(이영애)가 2억원의 빚을 안게 되자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마약 판매를 하게 되는 스토리다. 겁 많고 연약한 주부가 돈이 필요해 마약상으로 나서는 이야기가 국내 지상파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점은 여러 가지로 시사점이 크다. 현실은 이미 훨씬 앞서 나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마약청정국 지위를 이미 10년 전 상실했고, 이제는 하루가 멀다고 마약 관련 뉴스를 접하게 된다. 유엔은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을 마약청정국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데, 한국은 2015년 23.1명으로 이미 기준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무려 44.7명으로 늘었다.
'캄보디아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14일 현재 소셜미디어(SNS)에는 여전히 '캄보디아 고수익 아르바이트' 구인 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해당 글에서는 "보안상 일하기 가장 안전한 나라"라며 "지난달 직원 최고 월급 4500만 원"을 강조한다.
또 해외 일자리 중계 플랫폼 '하데스 카페'에 올라온 "캄보디아 테크 회사 직원 고용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웬치(범죄단지) 아니고 시내에 있는 사무실입니다. 중간에 일이 안 맞다 싶으면 한국 보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누리꾼들은 피해자들의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범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네이버 이용자 'zco***'는 "진짜 살벌한 글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저 글에 현혹되기 쉽겠다", 'dod***'는 "순진한 청년들을 꾀어 인생을 망가뜨리는 이런 놈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고 썼다.
"이 세상에 돈 쉽게 버는 법 없다"('hsn***'), "저 돈이면 당연히 불법적인 일이지"('why***'), "캄보디아에서 1500만원 준다면 보이스피싱밖에 없는 거 아닌가"('guc***') 등 '고수익 아르바이트'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IMF 당시 실업 문제가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던 것처럼, 콘텐츠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보이스피싱을 다루는 작품이 늘어난다는 건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어 "콘텐츠가 미해결 과제에 얼마나 깊이 천착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진다"며 "현실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소비로 호응하고, 그 반응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