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에 속해있음을 실감한다. 서울 한낮 기온이 섭씨 38도에 이르고, 서늘하던 대관령마저 33도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연일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다. 열대야는 일상이 됐다. '한증막 더위'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기상청은 "폭염이 8월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체질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불볕더위 속에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직원들의 옷차림이 바뀌고 있다. 이른바 '쿨비즈'(Cool-Biz). '시원한'(Cool)과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다. 가벼운 복장으로 근무 효율을 높이고 냉방 전력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오는 9월까지 반바지 출근 캠페인을 시행한다. HD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바지와 샌들을 허용했다. 인천국제공항과 서울 강동구청도 쿨비즈에 동참했다. 삼성·LG·SK·현대차·한화 등 대기업은 자율 복장제를 시행했고, 반바지 착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회사에서 반바지?"라는 놀라움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쿨비즈는 복장 자유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선 업무 효율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무더위에 격식을 차린 양복과 넥타이는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에너지 절감에도 기여한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쿨비즈 도입으로 냉방 온도를 2도 높이면 전력 사용을 약 1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조직 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복장의 경직성을 완화하면 상하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위계질서도 유연해질 수 있다. 특히 반바지는 상하 장벽을 깨는 망치 역할을 한다. 사장도, 신입사원도 비슷한 복장으로 출근한다면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에선 이미 쿨비즈가 대세다. 일본은 2005년부터 정부 주도로 쿨비즈 정책을 시작했다. 여름철 넥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자고 장려하면서 상당한 전력 절감 효과를 거뒀다. 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 국가는 기후 특성상 반소매와 폴로셔츠가 일반적이다. 필리핀 공무원은 전통 셔츠 '바롱 타갈로그'를 입는다. 정장을 대체하면서도 격식을 유지한다. 하지만 은행·관공서 업종에선 여전히 포멀한 복장이 표준이다. 시원하지만 품격을 잃지 않는 균형을 찾는 게 과제다.

한국에서도 쿨비즈가 여름 한철 캠페인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기상청은 매년 폭염이 반복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쿨비즈 확산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종별 복장 가이드라인, 고객 응대 상황에서 적용 기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쿨비즈는 탄소중립 시대에 직장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