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어원은 '돌맏이', 무리중에 가장 똑똑한 선두 뜻하는 우리말
이주일 "이덕화는 내 똘마니", 자민련 "이인제는 DJ 똘마니"
일제 거치며 욕으로 변질…어찌 국가 지도자들 입에서조차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유명한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본명 정주일)이 '똘마니'란 말을 입에 올렸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1992년 11월 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웃음을 선사하다 그만 사고를 쳤다. "대한민국에서 정주영보다 더 돈 많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는 '명언'을 남긴 것까지 좋았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민주자유당이 유세장에 이덕화와 주현미, 현철, 김형곤을 부르고 있는데, 사실은 모두 내 똘마니들"이라고 말한 것. 정상급 연예인들이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정권의 압박에 못 이겨 선거판에 불려다니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자신의 똘마니라고 한 것은 비정한 정치공세라는 비판이 따랐다.
이주일은 정치판에 간 뒤로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시선에 시달렸고, 결국 경기도 구리에서 금배지를 단 지 1년 만에 정계은퇴를 선언해버렸다. 그는 훗날 "정치판에 나보다 코미디를 잘한 사람이 많더라"며 "나는 욕만 뒈지게 먹었다"고 후회했다.
똘마니는 이후에도 심심찮게 등장해 정국을 어지럽혔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필의 자민련은 충남 논산 출신인 민주당 선대위원장 이인제가 새로운 충청 맹주로 부각되자 막말을 퍼부었는데, 그 중 "고향(충청도) 어르신도 몰라보는 김대중 똘마니"라는 표현이 말썽이 됐다.
격노한 이인제는 DJP 공동 정권의 축인 김종필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러자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은 "충청도 호적을 뽑아 김대중 고향인 호남으로 옮겨가라"고 공격했다. 그래도 충청 민심이 돌아오지 않자 자민련은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쳤지만 철저히 외면당하며 원내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향해 "음흉한 표정으로 이재명과 김어준의 똘마니를 자처하고 있다"고 막말을 퍼붓고, 이에 정 대표가 "윤석열 내란수괴 똘마니 주제에 입으로 오물 배설인가"라고 반격했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일상이 됐지만, 이제는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아무렇지나 않게 나오는 지경이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똘마니'는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돌'과 '으뜸'을 뜻하는 '맏'이 합쳐진 '돌맏'이가 어원인 순수 우리말로, 삼국시대 문헌에도 등장한다. 왜나라 왕의 회유에도 충절을 지키다 화형당한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김유신을 도와 삼국통일에 기여한 화랑 '죽지'도 똘마니로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만인의 으뜸을 뜻하는 '돌만(乭萬)'이란 한자어도 실려 있다.
'똘이장군' '꾀돌이'에서 보듯 '돌'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일제를 거치며 깡패 두목의 수하, 범죄 집단의 앞잡이로 변했다. 고대 때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우리말이 욕으로 변질된 것도 안타까운데 극한 정쟁 때문에 그 고유의 의미마저 잊히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