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순환적 거래' 조명

"닷컴 버블 시기 '밴더 파이낸싱'보다 더 복잡"

인공지능(AI)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순환적 거래'(circular deals)는 '윈윈'인가 아니면 거품(버블) 신호인가?

22일(현지시간)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주목받는 AI 생태계의 순환적 거래 사례와 의미를 짚었다.

첫 사례로 지난 9월 발표된 엔비디아와 오픈AI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들었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최대 1천억달러를 투자하고, 오픈AI는 엔비디아 칩을 수백만 개 구매한다는 게 파트너십의 핵심 내용이다.

구매를 위한 대출이 수반되지 않은 만큼 전통적인 '벤더 파이낸싱'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는 '순환적'이라고 WSJ은 봤다.

기업가치가 5천억달러로 평가되지만 여전히 적자 상태인 오픈AI에 대한 엔비디아의 투자는 오픈AI에는 인프라 확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도움을 주고, 엔디비아 역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구조다.

WSJ는 "낙관적인 투자자에게는 '윈윈'으로 보일 수 있지만 AI 생태계가 상호 의존하며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의심하는 회의론자들에게는 또 다른 근거를 제공한다"고 봤다.

하지만 순환적 거래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고 WSJ은 전했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보고서는 오픈AI,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AMD, 코어위브 등 6개 기업 간 자본 흐름을 화살표로 그렸는데 '스파게티 접시'랑 닮은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최근 오픈AI는 오라클로부터 약 5년간 3천억달러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오픈AI가 구매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엔비디아가 1천억달러를 투자하지 않더라도 이 구매가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고 WSJ은 지적했다.

또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가 오픈AI를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주당 1센트에 AMD 지분 최대 10%를 살 수 있는 워런트를 제공하면서 수백억달러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오픈AI에 고객이 돼 달라며 돈을 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데이터센터를 임대해주는 코어위브는 AI 생태계의 복잡한 상호 연결 구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WSJ은 짚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의 지분 약 5%를 보유하고 있고, 코어위브에 칩을 팔고 있다. 엔비디아는 2032년까지 코어위브가 팔지 못한 클라우드 컴퓨팅 용량을 전부 매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사실상 고객사 코어위브를 재정적으로 보증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WSJ은 판단했다.

코어위브의 현재 최대 고객인 MS는 오픈AI의 투자자이자, 오픈AI와 매출을 공유하며,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고, AMD와도 협력 관계에 있다. 오픈AI 역시 코어위브의 고객이자 주주다.

WSJ은 "이러한 거래 구조가 꼭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전환 기술인 AI에서 오픈 AI는 거대한 주체이고, 주요 기업이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하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면서 "오픈AI와 경쟁사들이 막대한 자본 지출을 정당화할 만큼 강력한 현금흐름을 창출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엄청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수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AI 모델과 제품 개발에 그처럼 많은 돈을 쏟아붓는 데 대해 투자자들이 지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면서 "AI 생태계가 벽에 부딪힐 수 있는 순간이며, 닷컴 버블 시기 순환적 거래와 비슷하게 될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순환성은 상승기에는 선순환으로 작용하지만 하락기에는 악순환으로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