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평범한 우리 국민 대부분 별 관심 없던 나라, 지구촌에서 영향력이 미미한 동남아시아 빈국이 느닷없이 검색순위 상단에 자리 잡은 건 최근 드러난 한국인 납치·살인 사건 때문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런 사태가 단발성이 아니라 오랜 구조적 요인이 깔린 조직적 범죄란 사실, 우리 국민이 캄보디아에서 감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사실 등이 밝혀지며 언론도 뒤늦게서야 이를 집중 조명 중이다.
캄보디아는 대체 어떤 나라인 걸까. 어느 정도 시사 상식이 있다면 캄보디아를 놓고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는 고대 유적 '앙코르와트'이다. 저명한 관광지이니 직접 유람한 우리 국민도 꽤 될 테다. 다른 하나는 중국 문화대혁명, 소련 대숙청과 함께 현대사에서 야만적 대학살로 꼽히는 릫킬링 필드릮이다. 1970년대 중반 좌익 공산 세력인 크메르루주는 마오쩌둥의 문혁과 홍위병을 동경하고 모방해 자본주의에 물든 지식인과 시민을 도살하듯 대량 학살했다. 4년간 숙청 기간에 국민 4분의 1가량이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캄보디아의 국가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우리 국민 납치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이제야 주목받지만, 사실 캄보디아는 경제난 속에 국제범죄 온상이 된 지 오래다. 좌파 지배층의 실정과 장기간 내전으로 국가 경제는 파탄 났고 관료 조직은 부패했으며 공권력은 와해했다. 그러자 중국계 기업형 범죄 조직이 구멍 난 캄보디아로 몰려들었다. 최근 온라인 스캠(사기) 조직이 급증했고, 그에 따라 인신매매, 감금, 납치 등도 덩달아 늘었다. 공권력이 못 미치는 사기범죄단지(웬치)가 있을 정도다.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가량을 국제범죄 수익으로 추산하는 통계도 있으니, 전 세계에 민폐를 끼치는 나라가 된 셈이다.
중국과의 밀착도 불행을 초래한 요인이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의 대표적 친중 국가이면서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거점 중 하나다. 베네수엘라, 네팔, 파키스탄 등 일대일로 참여로 부채만 늘어 경제난이 가중된 개발국들이 많은데, 캄보디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국민 시신이 발견된 시아누크빌 경제특구 같은 곳이 일대일로와 맞물려 개발됐다가 범죄 소굴로 전락한 곳이다. 이런 특구에 중국 카지노 업체와 자본 등이 대거 진출해 카지노와 관광 시설을 운영했는데, 수익성이 떨어지자 웬치로 변질한 사례가 많다. 철조망과 무장 경비원까지 세운 웬치 수십 곳에서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연애빙자사기), 코인 사기 등 다양한 범죄가 기업화돼 이뤄진다고 한다.
중국 조직이 활동하는 지역에선 북한의 검은 움직임도 함께 감지된다. 북한은 아예 국가 차원에서 범죄를 저질러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해킹, 로맨스스캠 등 온라인 범죄는 물론 가상자산 탈취와 마약 제조·유통까지 서슴지 않는다. 북한의 이런 범죄 근거지 중 하나가 바로 캄보디아다. 유엔도 일찌감치 캄보디아를 북한의 해외범죄 허브로 규정했다. 특히 캄보디아가 북한 정권의 돈세탁 창구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방 선진국들이 대북 제재 감시를 위해 만든 릫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릮(MSMT)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각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매년 수조 원 규모 암호화폐를 탈취해 캄보디아와 중국 등에서 현금화했다. 캄보디아 금융사인 후이원 그룹은 북한 자금 세탁을 도운 혐의로 미국과 영국 정부로부터 릫초국가 범죄조직릮으로 지정됐다.
캄보디아는 이처럼 범죄를 저지르기 좋은 나라, 각국 범죄자들이 자국 사법권에서 도피하러 가는 나라, 검은돈을 세탁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턴가 캄보디아 관련 스캔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과거 부산저축은행과 라임자산운용 사태 당시엔 적잖은 투자금이 캄보디아로 들어간 게 문제가 됐다. 뇌물공여, 대북 송금 의혹 등을 받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수행비서가 도피했다 붙잡힌 곳도 캄보디아였다. 간첩 활동과 관련된 일도 있었다. 최근 간첩 혐의가 확정된 민주노총 간부들이 북 공작원을 접촉해 지령받은 곳이 캄보디아였다. 릫창원 간첩단릮 사건 관련자들이 대남 공작 교육과 공작금을 받은 곳도 캄보디아다. 중국, 북한과 관계가 좋은 캄보디아는 북한이 대남 공작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캄보디아는 개발국이어서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제사회에 폐를 끼치면서도 ODA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도 캄보디아에 상당 규모를 공여한다. 이번 우리 국민 피살 사건 여파로 캄보디아에 대한 ODA를 중단하자는 요구가 분출한 건 자연스러운 반응인 듯하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ODA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치, ODA 공여의 근본 취지 등을 고려하면 즉각 중단은 감정적이고 급진적일 수 있다. 다만 ODA를 어느 정도 축소함으로써 캄보디아 정부에 경고장을 보내는 건 검토해볼 만한 카드다. 우리 사법 당국과 정보 당국도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허점들을 면밀히 보완해 국민 보호와 안보 수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