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목사
2019-09-26 00:00:00
20년 전 미국에 살던 9살 소녀 '클린 스칼레스'는 마약중독자인 부모가 방치하는 가운데 어린 두 동생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이 배가 고파서 힘들어하는 날에는 나쁜 일인 줄 알지만 마트에서 빵을 훔쳐서라도 먹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있을 때 항상 그를 반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니라 자기 집 앞을 순찰하는 경찰관이었습니다.
2019-09-19 00:00:00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종격투기 파이터 한 사람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명이 달려들어도 나를 쓰러트릴 수 없습니다." 이에 그들은 재미 삼아 모의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9-09-12 00:00:00
옛날 한 서당에 글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청년이 공부하기를 청하면서 찾아왔습니다. 훈장은 다른 학동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서 청년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일과 농사일 때문인지 서당을 자주 빠지는가 하면 배움의 속도도 매우 느린 그에게 훈장이 말했습니다. "내 자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사서삼경과 논어, 맹자를 가르치려 했는데 자네가 그 뜻을 다 알기에는 너무 부족한듯하니 이제 서당을 그만 나와 주기를 바라네."
2019-09-05 00:00:00
우리 조국은 지금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2004년 그분들을 위해 법정 안팎에서 고군분투 변호하던 한 명의 변호사를 기리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후세 다쓰지'로서 그는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최초의 일본인이자 대한민국에 단 두 명밖에 없는 일본인 출신 독립유공자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화로도 상영되어서 잘 알려진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학살 속에 체포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했습니다. 한 변호사도 바로 후세 다쓰지였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에 대한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후세 다쓰지는 이러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일본군과 경찰이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라 하면서 추궁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체포된 독립 운동가들을 변호하고 식민지 정책의 부당함을 폭로하면서 인간의 양심을 따르는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비록 일본인이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양심을 지켜 기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019-08-29 00:00:00
캐나다의 인디 뮤지션 데이브 캐럴은 2007년 3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유나이티드 항공의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수화물 운반 직원이 자신의 기타 케이스를 함부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곧바로 승무원에게 항의를 했지만 묵살당하고 말았습니다.
2019-08-22 00:00:00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워노기리군 달리 마을에 70세의 한 노인이 숲을 일구었습니다. 사디만 할아버지는 밭을 일구기도 힘든 나이에 1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전 이 마을의 숲은 벌목과 산불로 인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2019-08-15 00:00:00
갈매기는 말 그대로 무서울 것이 없는 해변의 포식자이기에 바닷게들이 갈매기와 마주치면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도 개미핥기의 콧김 한방에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남극에 모여 사는 귀염둥이 펭귄도 범고래가 나타나서 위협을 가하면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삶의 위기를 맞이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019-08-08 00:00:00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과연 태양이 움직이고 있을까?아니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일까?" '
2019-08-01 00:00:00
스페인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것들이 많습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는 건축을 시작한 지 10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모습이 있습니다.
2019-07-25 00:00:00
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식의 앞날을 생각해서 이러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68명 가운데 68등이라는 성적표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가 실망하실까봐 성적표에 있는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쳐서 갖다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