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만에 고국 땅 밟은 '의병 관련 문서'…헌병경찰의 탄압 '생생'
최익현 편지 등 13건 모두 처음 확인…임시정부 역사서도 미국서 환수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서로 아끼고 보호하기를 전보다 더해야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토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08년 5월 허겸(1851∼1939)은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일제 침략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모인 의병 연합부대를 이끌던 동생 허위(1855∼1908)가 붙잡힌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우를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이 붙잡힌 뒤에 의병 각 군진(軍陣)이 실망해 기강이 해이해질 우려가 없지 않다"며 "더욱 분한 마음으로 독려하고 한마음으로 협력해 대사(大事·큰일)를 도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땅을 되찾고 국권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의병이 일어난 이유였기 때문이다.
구한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저항했던 의병들의 문서와 편지가 광복절을 앞두고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국내로 들여온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을 공개했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을 아우른다.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이강년(1858∼1908) 등이 남긴 글과 위정척사론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항일 의병 운동을 이끈 최익현(1833∼1906)의 편지 등이 담겼다.
의병들이 남긴 기록은 2개의 두루마리에 실려 있다.
자료를 이어 붙인 뒤 각각 '한말 일본을 배척한 두목의 편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檄文·선동하거나 불의에 대한 분노를 고취하고자 쓴 문서)'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완전히 펼쳤을 때 가로 길이가 각각 406.5㎝, 569.5㎝에 달하는 자료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두루마리 첫머리에 쓴 글과 전문가 견해를 토대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芥川長治)가 자료를 모은 뒤, 1939년 8월 지금의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개천장치는 1930년대 만주국 훈장을 받기도 한 헌병경찰로,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승승장구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문서 곳곳에는 어려운 상황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던 의병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찌 각골명심(刻骨銘心·뼈에 새길 정도로 마음속 깊이 새겨 두고 잊지 아니함)해 흥복(興復)의 희망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겠습니까?" (1908년 의병장 노재훈이 쓴 문서)
양주·파주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윤인순(1880∼1909)은 친일 단체인 일진회에 보내는 '고시'(告示) 글에서 "지금 너희들의 하는 바는 부끄럽지 않겠는가"며 꾸짖기도 한다.
의병 활동을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감시했던 일제의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1842∼1915) 일가가 시문집을 만드는 현장을 급습한 뒤 '다수의 불온 문서를 압수'했다고 기록한 부분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최익현이 1851년 '최기남'이라는 이름으로 쓴 편지에는 "국권 회복을 제창하며 군사를 일으키다 체포돼 대마도(對馬島·쓰시마섬)에 유배됐는데 음식을 끊어 죽었다"며 상세히 설명한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개천장치는 문서와 편지마다 누가 작성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써뒀다. 자료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자료는 일본의 한 고미술 거래업체가 소장했던 것으로, 지난 7월 복권기금을 통해 구입했다.
박민영 연구원은 "13건의 문서 모두 처음 확인되는 자료"라며 "의병 군진간 군사 협조, 갈등 양상 등 구체적인 활동 내용이 기록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함께 공개된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로, 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다.
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식민 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 과정을 정리했다. 총 4책으로 구성돼 있다.
편찬 당시 총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독립기념관 소장본,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뿐이다.
지난 5월 미국에 거주하는 한 동포가 기증한 이 자료는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명인 김병조(1877∼1948)의 인장(印章·도장)이 찍혀 있어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이 시문을 쓴 현판도 함께 공개했다. 현판은 일본에서 고미술 거래업체를 운영하는 김강원 씨가 최근 기증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나라 밖에 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을 넘어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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