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떠나라' 경고 뒤 헤즈볼라 시설 겨냥 융단폭격

피란민 50만명 추산…북쪽 가는 길은 인산인해 아비규환

"이제 시작에 불과"…주민들, 국제사회 '공염불'에 냉소·체념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여기저기서 공습이 있었고, 눈앞에서 터지는 걸 모두 봤어요. 다들 다급해져서 우리 차는 두 번이나 다른 차와 부딪혔어요."

급격히 전쟁터가 돼가는 레바논에서 피란길에 나서는 주민들의 모습을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이 24일(현지시간) 기사에 담았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격화하면서 레바논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는 주민은 수십만명.

이스라엘군은 주민에게 헤즈볼라 시설 근처를 떠나라고 경고한 뒤 레바논 남부를 중심으로 곳곳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집에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다.

수도 베이루트 북쪽 교외지역인 데크와네의 한 학교에 몸을 맡긴 하산(23)은 피란 당시의 아비규환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레바논 남부 디에르 알자라니에 살던 그는 거세지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란했다.

몇 가지 짐만 싣고 나선 도로에는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 번잡했다고 하산은 말했다.

상공에는 이스라엘 전투기와 드론이 날아다녔고, 공습으로 인한 연기와 미사일 소리도 뚜렷했다.

하산은 당시 상황이 "끔찍했다"며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도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압달라 부 하비브 레바논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의 최근 공격 전에 레바논에는 약 11만 명의 피란민이 있었지만 "이제는 5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이후 이스라엘-레바논 접경지대에서 헤즈볼라와 교전을 이어온 이스라엘은 최근 공세 강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특히 지난 23일부터 레바논 곳곳을 대규모로 폭격하는 이른바 '북쪽의 화살' 작전을 단행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집을 떠난 자국의 북부 피란민을 되돌려 보내기 위한 작전 수행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레바논 민간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짚었다.

레바논 보건부는 '북쪽의 화살' 작전으로 어린이 50명 포함 최소 558명이 숨지고 1천800명 이상 다쳤다고 밝혔다.

레바논 당국은 베이루트를 비롯한 각지의 학교들을 피란민 대피소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레바논 당국자들은 전국의 학교 252곳에 최소 2만7천명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베이루트에 있는 자히아 카드두라 학교에서도 피란민을 받기 위한 준비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공무원들은 교실 바닥에는 매트리스를 깔고, 큰 소리로 외치며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안내했다.

이곳에 온 피란민 자파르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 포탄 두 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무너진 집에서 나온 잔해가 마을의 주요 도로에까지 쌓이는 바람에 작은 시골길을 따라 운전해야 했다"며 "우리가 떠날 때 구급차 5대가 부상자들을 싣기 위해 마을로 들어갔다"고 했다.

일부 피란민들은 이스라엘에 자제를 촉구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폭탄으로 다친 팔을 붕대로 감은 한 피란민은 "미국과 국제사회는 그저 형식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쟁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저 용인하고 있을 뿐"라고 냉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면전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외교적 해결책은 아직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확전을 억제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를 두고 임기말 레임덕 속에 회의적 시선이 점점 더 자주 관측된다.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