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 비판에도 국정주도권 노려 강행…현안 말아끼고 비자금의원 비공천 표심구애
기시바, 3년전 조기총선 승리로 입지 강화…패배시 옛 아베파 중심 거센 공세 전망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중의원(하원)이 9일 해산하면서 정치권이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번 중의원 해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권 출범 시점 기준으로 최단 기간인 8일 만에 이뤄졌다.
집권 자민당에서 오랫동안 비주류로 활동해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국정 운영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 던진 승부수로 평가된다.
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의 국회 해산권은 종종 유리한 시점에 선거를 치러 정권 기반을 다지려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는 국민이 새 정권을 판단할 재료를 제공한 뒤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출범 직후 중의원 해산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직후 입장을 바꿨고, 이례적으로 총리 취임 전날인 같은 달 30일 당 본부에서 10월 27일에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야당을 중심으로 '변절', '거짓말쟁이' '언행 불일치' 같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시바 총리는 "새로운 내각 발족에 맞춰 국민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변절했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본격적인 선거전을 앞두고 표를 잃지 않기 위해 민감한 안보·경제 현안 에 대해선 자신의 지론이었음에도 말을 아끼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계속 강조해왔던 미일지위협정 개정, '아시아판 나토' 창설 등에 대해 지난 7∼8일 국회에서 "단시간에 실현된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라거나 "한 명의 의원으로서 한 생각이었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아울러 정치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개헌이나 일왕 승계 문제에 대해서도 "총리 입장에서 언급하는 것은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여야가 사실상 선거전에 들어갔다"고 짚었다.
이시바 총리는 또 여론의 비판이 컸던 만큼, 선거에서는 득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 12명을 공천에서 제외하면서 표심을 겨냥했다.
이들 중 11명은 기존 최대 파벌이자 강경 보수 성향 의원이 많은 옛 '아베파' 소속이다. 당내 주류와 대결을 불사하면서까지 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다.
지난해 연말께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문제는 자민당은 물론 이전 기시다 내각에 대한 최대 악재였던 만큼, 비자금 스캔들이 '근원'이 된 이번 선거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현지 언론은 평가했다.
이번 조기 총선에서 자민당은 의석수가 다소 감소하더라도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하면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 기류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 465석 중 과반 233석을 훨씬 넘는 258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가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 장기 집권 발판을 마련해 독자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에는 옛 아베파 등을 중심으로 당내 일부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조기에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는 "이시바 총리가 꾀하는 것은 3년 전 (기시다 전 총리의) '기습 승리' 재현"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2021년 10월 4일 취임해 같은 달 31일 총선거를 치렀을 당시 내각과 자민당 지지율 합계가 82%로 이시바 정권의 79%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짚었다.
자민당은 2021년 기시다 정권 출범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261석을 확보했고, 이를 계기로 기시다 전 총리는 당내 입지를 강화했다. 그의 재임 일수는 1천94일로 일본 총리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번째로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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