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지난 10일 유타주 유타밸리대학에서 벌어진 총성 한 발이 미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타일러 로빈슨(22)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한 피해자는 찰리 커크(31)다. '터닝포인트USA' 창립자이자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젊은 보수 아이콘'의 피살 사건은 미국을 내전적 정치 상황으로 밀어 넣는 도화선이 됐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엔 "파시스트, 총알을 잡아봐"와 '벨라 차오(Bella Ciao)'가 새겨져 있었다. 벨라 차오는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파시즘에 저항하던 이들이 부른 노래다. 범인이 자백한 동기도 "커크는 증오를 확산한다"는 것이었다.

美 정치 뒤흔든 찰리 커크 암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엔 치밀한 정치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J.D 밴스 부통령은 직접 '찰리 커크 쇼'를 진행하며 좌파 단체들을 정치 폭력의 배후로 지목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찰리의 이름으로 좌파 테러 네트워크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고, 팸 본디 법무장관·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좌파 책임론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멤피스와 시카고 등 진보 성향 도시에 주 방위군 투입을 발표했다. 여기엔 세 가지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커크를 '순교자'로 추앙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을 결집하고, 좌파를 '테러 세력'으로 규정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며, 경제 문제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안보와 치안' 어젠다로 새로운 승부처를 만드는 것이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소환

이 같은 흐름은 언뜻 1950년대 매카시즘을 연상시킨다. 조지프 매카시가 의회 청문회와 블랙리스트로 내부의 적을 색출했다면, 트럼프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더욱 광범위하고 즉각적인 압박을 가한다. 자신의 지지층인 MAGA 세력을 동원하고, 백악관과 법무부, 국토안보부의 행정 권력까지 결합해 전면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치적 파급은 빨랐다. 커크 사망을 "자업자득"이라고 한 MSNBC 평론가 매슈 다우드는 즉시 해고됐다. 또 교사·공무원·항공사 파일럿 등 최소 15명이 비슷한 발언으로 직장을 잃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국방부는 "커크 사망 조롱 금지" 지침을 발표했고, 우파 인플루언서들은 "커크 죽음을 축하한 자들의 미래를 파괴하겠다"고 협박했다.

정치 극단화이 민주주의 위협

트럼프의 행보는 세계 극우 세력에게 새로운 '교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정치적 비극을 활용해 상대 진영을 '테러 세력'으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을 동원하는 방식은 우파 포퓰리즘·민족주의 성향 지도자들에게 매력적인 모델로 다가설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이민 문제와 결합한 극우 포퓰리즘 확산 속에서 트럼프식 전술은 모방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진영 갈등이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타협과 공존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가 어디까지 극단화할지, 그 여파가 세계 민주주의에 어떤 균열을 남길지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도 ‘이념적 내전’ 경고음

한국도 진영 간 갈등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한국 정치는 이미 좌·우파 간 극단적 대립이 굳어진 상황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혐오 확산,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의 정치화, 언론의 양극화는 미국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찰리 커크의 암살 사건이 불러온 정치적 파장을 목격하면서 한국도 비슷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념적 내전'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