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2020년 무노조 경영 폐지 선언…이후 노조활동 활발
최근 성과급 불만속 노조 가입 급증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삼성이 2020년 '무노조 경영'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이후 처음으로 삼성전자 노조가 29일 파업을 선언했다.

노조 활동이 활발해진 데다, 최근 실적 악화로 성과급을 둘러싼 불만이 커지면서 사상 초유의 파업 선언에 이르게 됐다.

◇ '노조 와해 공작' 사법부 판단 이후 막내린 무노조 경영

삼성은 창립 이후 줄곧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다.

노조 없이도 회사와 노동자가 직접 협상해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이 바탕이었다.

회사 측은 임직원의 권익을 선제적으로 보장하는 취지라고 내세웠으나, 노동자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삼성은 201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재된 '노조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이라는 표현을 '근로자 대표를 경영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내용으로 바꾸기도 했다.

무노조 경영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성에서 '노조 와해 공작'이 실제 있었다는 사법부 판단이 나오고, 이에 삼성이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2019년 12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임원이 법정구속 되는 등 26명의 유죄가 인정되자 "대단히 죄송하다"며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이어 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 폐지를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 반도체 성과급 '0'…전삼노 조합원 올들어 약 2만명↑

이 회장의 무노조 경영 폐지 선언을 전후로 삼성전자의 노조 활동도 활발해졌다.

2019년 11월에는 삼성전자 제4노조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공식 출범했다.

무노조 경영 원칙에도 삼성전자에서는 3개의 소규모 노조가 활동했으나, 전국 규모 상급 단체에 가입한 삼성전자 노조는 전삼노가 처음이었다.

전삼노는 노조 설립 5개월 만에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등 조합원 수를 늘리며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러면서 전삼노를 포함한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사측과 2021년 8월에 첫 단체협약을, 2022년 8월에 첫 임금협약을 각각 체결했다.

또 2023년 1월에는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인력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제5노조인 삼성전자 DX노조가 출범했다.

이로써 현재 삼성전자에서는 전삼노와 DX노조를 포함해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삼성전자구미노조, 삼성전자노조 동행 등 4개 노조가 활동 중이다.

올해 2월에는 삼성전자 DX노조를 비롯한 삼성 5개 계열사 노조를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이 탄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에서 최대 규모인 전삼노 조합원 수는 작년까지 9천명 정도로 전체 직원의 7%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작년 말과 올해 초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을 중심으로 성과급 불만이 고조하면서 조합원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반도체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에 삼성전자 DS부문의 지난해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은 연봉의 0%로 책정됐다.

DS부문의 목표달성장려금(TAI) 지급률도 작년 하반기 기준 평균 월 기본급의 12.5%로 상반기(25%)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DS부문 내에서도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TAI도 0%였다.

전삼노 조합원 수는 지난해 9천명 수준에서 성과급 예상 지급률이 공지된 12월 말 처음 1만명을 돌파한 이후 현재 2만8천여명까지 늘어났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직원(약 12만5천명)의 22% 정도다.

성과급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월부터 올해 임금협상을 위한 교섭을 이어갔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후 노조는 중앙노동위원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이 가능한 쟁의권을 확보했다.

삼성전자에서는 1969년 창사 이후 파업이 벌어진 전례는 없었다.

노조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쟁의 조정을 신청해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제 파업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노조가 실제 파업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교섭이 파행을 맞으면서 삼성전자 창사 이래 파업 선언이 현실화했다.

이날 전삼노는 "사측이 교섭에 아무런 안건도 준비하지 않고 나왔다"며 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은 즉각적인 총파업에 나서는 대신 연차 소진 등의 방식으로 단체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