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위한 일반 내용 정리도 부담"…일본인은 10년간 최소 17명 구속

중국 당국이 간첩 혐의로 한국인 반도체 기술자를 체포·구속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에서 사업을 수행해온 한국 기업과 교민 사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동부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살던 한국 교민 50대 A씨는 작년 12월 중국 공안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중국 검찰은 올해 5월 A씨를 구속했다. 한국인이 중국의 개정 반(反)간첩법(작년 7월부터 시행) 적용을 받고 구속된 첫 사례다.

A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근무하던 기술자로 2016년 신생 기업인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영입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CXMT는 설립 초기부터 정부 지원 속에 공격적 투자를 했고,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선도해온 삼성전자 인력을 대거 영입하면서 기술 확보를 시도했다.

한국 검찰은 지난해 12월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모씨가 2016년 CXMT로 이직하면서 국가 핵심 기술인 삼성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무단 유출해 CXMT의 제품 개발에 사용하게 한 것으로 파악하고 김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삼성전자와 관계사 기술 인력 20여명을 빼간 것으로도 드러났다.

중국 당국은 A씨가 CXMT의 비밀을 한국에 유출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CXMT와 글로벌 선진 수준 간 기술 격차가 여전히 6∼8년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들어 '중국 기술 유출'에 의구심을 보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영업 중인 한국 기업과 주재원, 퇴직 후 중국에 재취업한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어떤 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니 중국 사업을 위해 현지 상황 같은 '일반적인' 내용을 정리해 한국에 전달하는 것도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첫 사례가 '시범 케이스'일 수 있어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이 부담스럽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한중 기술 협력 사업에 다년간 종사한 한 기업인은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만 중국 기업이 지금 어느 정도의 기술을 보유했는지를 체크하는 것 역시 문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는 않지만 한국 기업을 퇴직한 뒤 중국에 온 기술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타국 사안이라고만 생각한 간첩죄 문제에 한국인이 연루되면서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간 반간첩법 문제로 외국인이 중국에서 구속된 사례는 종종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29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시진핑 지도부가 2014년 반간첩법(개정 전)을 시행한 이후 10년 동안 적어도 17명의 일본인이 구속됐으며 이 가운데 일본 대형 제약업체인 아스텔라스제약의 남성 직원 등 5명이 현재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앞서 지난해 3월 아스텔라스제약 현지 법인 간부인 50대 일본인 남성을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올해 8월 기소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미중 갈등 속에 외국 인력과 조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캐나다인이나 호주인, 일본인처럼 미국과 관계가 깊고 중국과 마찰이 생기는 국가 시민이 적발되는 사례가 많아 '인질 외교'라는 지적도 있다"고 짚었다.

중국에서 40년 동안 근무한 영국인 기업가가 해외에 불법적으로 정보를 판매한 혐의로 올해 초 5년 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중국 당국의 자의적 운용을 가능케 하는 방첩 규정의 모호성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작년 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 법률에 대해 "'국가 안전'과 관련해 보호돼야 할 구체적인 사항의 범주가 명확하지 않고 비교적 추상적으로 규정돼있는 관계로 실제로 개별 사건에서 일정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 국가안전부는 개정 반간첩법 시행 1년을 맞은 올해 7월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을 통해 간첩 혐의 기소는 용의자가 돈을 받았거나 그들의 행위가 국가 안보에 실제로 해를 입혔는지 여부에 달려있지 않으며 국가 기밀과 정보의 수집·제공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도쿄=연합뉴스) 정성조 박성진 특파원 x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