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 돌파 우려…"조기탄핵하고 예산 합의처리하라"

전문가들 "해외, 합법적 절차 주목…총리·부총리 중심 위기대응 나서야"

대한민국 경제가 '탄핵정국 장기화'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가 국회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해제되면서 해프닝처럼 여기던 해외투자자들의 눈빛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처리가 무산되자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최고조로 치닫는 모습이다.

미국 포브스지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 사태에 대한 비싼 대가는 한국의 5천100만 국민들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이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에 미칠 메가톤급 충격파를 고려하면 정치권 인사들이 지금처럼 손익을 따지며 지체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 통치력을 상실한 대통령을 탄핵해서 거취에 관한 논란을 최대한 빨리 매듭짓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총리 및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위기대응에 나서는 게 대외신인도 붕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첫 신호가 될 것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예산안의 세부 내용은 차치하고,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 "다음 달에는 전혀 다른 상황될 것…합법적 퇴진절차 시급"

전문가들은 계엄사태의 후폭풍을 진화할 골든타임은 길게 봐도 이달 중하순까지라며 정치권에 조속히 사태를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금융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10일 통화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측면을 꼽자면 아직 12월이라는 것"이라며 "대통령 퇴진을 둘러싼 공방이 결론 없이 몇주 더 이어지고 내년 1월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고 우려했다.

국내 한 금융기관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빨리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게 정답"이라며 "1%대 저성장 시대라고 걱정했지만, 불과 1~2주 시간이 지나면 그조차도 장밋빛 전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강성진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 신용평가사들도 계엄에 관해 해프닝성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지금은 생각보다 장기화하는 분위기"라며 "정치 상황이 계속 이렇게 간다면 신용등급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대통령은 이미 거의 탄핵당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라며 "헌법재판 단계로 이어지면서 그나마 논쟁이 줄어들게 된다. 사법부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금융시장은 이들이 경고한 앞날의 예고편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전거래일보다 무려 17.8원 치솟았다. 오전 10시30분 전후로 "현재 군통수권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국방부의 입장이 나오자, 환율은 순간적으로 폭등했다. 따져보면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시장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환율이 이렇게 '탄핵안 투표 불성립' 직후 1,400원대 중반에 접근한 기세를 몰아 금세 1,500원을 뚫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 투자를 대거 철회할 경우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환율을 방어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환율이 뛰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유동성에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위험이 있다.

이날 코스피는 2.8%, 코스닥 5.2% 급락했다. 계엄선포 이튿날인 4일 이후로 4거래일간 시가총액 144조원이나 증발했다.

채권시장에도 불안감이 감돈다. 외국인들이 국채선물을 팔아치우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정치권발 뉴스를 주시하면서 판단을 보류하는 분위기다.

채권시장 한 전문가는 "정치권의 퇴진 레토릭이나 차기 리더십 여부는 해외 투자자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라며 "언제 탄핵이 이뤄지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논란이 조기에 정리되느냐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 예산안 합의실패땐 신인도 직격…"정치-경제 분리, 상징적 변곡점"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처리되는지도 국내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외환시장의 키를 쥔 해외투자자들의 시각에서 파행으로 치닫는 예산안 협상은 극심한 국내 정치갈등이 경제문제로 번지는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수활동비, 예비비, 지역화폐 예산 등을 둘러싼 예산항목 논쟁과는 상관없이, 일단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모양새 자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일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의 강한 시장 기초체력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고려할 때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정국불안은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파급을 미치고 있다.

당국자들의 반복적인 시장안정 메시지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금세 효력이 약해진 모습이다. 이는 국회의 예산안 협상이 교착상태인 탓이다.

만일 야당 예산안이 단독으로 의결되는 사상 초유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정치·경제 시스템을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들의 시선도 한층 싸늘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핵심 관계자는 "예산안 합의 처리가 불발되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있다는 논리가 무너지는 상징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우리 경제시스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환시장부터 망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예산안 여야 합의 처리는 정치·경제 상황이 정상적인가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액 예산안이 처리되면 결국 내년 추경으로 이어져야 하고, 현재의 경기 둔화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며 "추경 가능성이 커지면 장기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한지훈 송정은 기자 jun@yna.co.kr hanjh@yna.co.kr s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