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증시에 불안해진 부자들 관망세로 돌아서

호황을 보이던 미국 고가 주택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미국 주식시장 변동성도 매우 심해져 고가 주택을 매수하려던 부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발효되고 주식시장이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면서 거래가 임박했던 고가 주택들의 계약이 여기저기서 무산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1일 뉴욕 맨해튼의 고급 주택가 레녹스힐에 있는 방 4개짜리 공동주택(Co-op) 매매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 매물은 부동산 시장에 1년 넘게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으나, 1천25만 달러(약 146억5천만원)에 계약됐다.

하지만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지난달 13일에 계약이 취소됐다. 매수자가 보유주식이 25% 폭락한 데 충격을 받아 매수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담당 중개인은 "트럼프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고가 부동산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식 등 자산가치 상승에 힘입어 몇 년간 활황을 보였다.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플로리다주 팜비치, 콜로라도주 아스펜과 같은 부유층 거주지에서는 금리상승과 관계없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판매 가격 기준 상위 5%의 미국 고가 주택 중간 판매 가격은 지난해 2분기에 8.8% 올라 일반 주택 상승률의 2배를 넘었다. 중개업자들은 월가의 보너스가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호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요즘은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해지면서 구매자들이 거래를 철회하는 일이 많아졌다.

부동산 거래사이트 리얼터닷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0% 부자들은 총자산의 36.3%를 주식과 뮤추얼 펀드로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의 자산 비중은 18.7%다. 주가가 하락하면 부동산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관세 여파로 이달 3일과 4일 이틀 동안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6조6천억 달러가 사라지자 고가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았다.

이후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주식시장은 반등했지만 고가 부동산 시장에는 아직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부자 동네 벨에어에서는 6천500만달러(약 929억원)짜리 저택 거래가 잔금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계약서와 계약금을 에스크로 회사에 맡기는 단계까지 갔으나 상호관세 발효일에 철회됐다.

이 계약을 중개했던 애런 커먼은 "지난 2주간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매수자들은 아주 예민한 상황이며, 겁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뉴스에 너무 부정적인 소식들이 나오면 사람들은 부동산 매수 결정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4천200만 달러(약 600억원)짜리 집을 중개하려다 무산된 부동산 중개인 줄리언 존스턴도 "내 퇴직연금도 이번 주에 타격을 입었다. 기분이 나빠졌는데 나가서 돈을 쓰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기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