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깨다
김준철
왜 캐롤은 숨차게 빠르거나
숨막히게 느린걸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왜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 걸까
애써 들썩이는 세상은
풍경에만 묻어나고
슬쩍 눈길을 줬다가 급히 앞만 바라봐
겁대가리없이
축사와 건배사와 노래자랑
선물은 군대처럼 무대의 중앙에서 빨간 군복을 입었지
SNS로 퍼지는 바이러스가 출몰한다면
이제 우린 어디로 숨어야 하는걸까
옮지 않고 걸리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굴러 먹던 삼류 무협소설이냐고
확! 주화입마를 깨고 장풍을 날려버려
변함없이 꾸준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조금의 주춤거림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후회나 자책, 미련 따위로 단 한번 뒤돌아 보지 않고
하던 짓꺼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그리하여 밤과 낮이 만들어 지고
계절이 색을 입고
사랑이 만들어지고 너와 나도 만들어지고
죄와 사망에도 이르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표정도 없이 목표도 없이 집도절도 없이
더욱 기가막히게도 약속조차 없이
세상의 종말도 상관없고
새로운 시작도 아니라는 것을
지랄스런 한 날의 연장이고
연장의 연장, 세일의 세일, 축복의 축복
쌓이고 쌓이는 눈 위로
덮혀지는 불안의 시간, 균혈의 도로, 불신의 서성임
보이지 않으면 상관없어
우린 존나 빠르거나 존나 느린 리듬 어딘가에 맞춰 존나 흔들어
마치 더듬이를 잃어버린 곤충처럼
날개를 잘려 맴도는 파리처럼
심연의 기슭
계절은 정해진 계보를 술술 외우고
봄여름가을겨울봄여름가을겨울봄여름가을겨울
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
아니아니
누구와는다르게남들보다빠르게누구와는다르게남들보다빠르게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123456789101112
왜 멀쩡하게 순서대로 가다가
다시 1월이냐고
왜 어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얼리고 녹이고
정말 이러기 있기 없기
갑자기 맨 앞에 서게되는 공평함의 불안함으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쉽게 정리하고 쉽게 시작하는 연말연시가 불편하기만 하다.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음에도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그럼에도 우린 너무 쉽게 또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시간과 타협하게 된다. 그럼으로 우린 다시 숨을 쉬고 또 웃고 또 잠을 청한다.
하지만 종종 쉽게 보내지 말고 오래 끌어안고 들여다 볼 시간도 필요하다.
2022-12-2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