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
2024-09-03 00:00:00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몇 달 앞둔 2001년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서 '속일본기 (續日本紀)'를 인용해 '50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간무 천황의 생모는 누구며 백제 25대 무령왕과 어떤 관계일까? '속일본기'는 이렇게 전한다.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다.''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 이라는 사람의 후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황태후의 성은 화(和)씨라고 말하고 있다. 헌데 31대 요메이(用明) 천황과 그의 아들인 쇼토쿠 태자의 성 또한 화(和)씨로 백제 무령왕의 성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쇼토쿠 태자는 백제와 신라의 영향력에 힘입어 한국과 중국의 제도, 문물 등을 수입하여 국내의 제반 체제를 혁신하고 아스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후 천황가계는 백제계가 주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천황 가계가 한 핏줄로 이어진 것처럼 조작해 왔다. 아무튼 쇼토쿠 태자는 당시17조 헌법의 첫머리를 '화(和)로써 귀하게 여기며…'로 시작할 만큼 화를 중요시 했는데 바로 이 화목할 화(和)자가 일본의 집단 정신문화를 칭하는 글자인 셈이다. 해서 예를 들어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일본음식인 일식은 사실 화식(和食)이 더 맞는 말이고 한국 소고기를 한우(韓牛)라고 하는데 비해 일본 소고기는 화우(和牛), 즉 와규라고 하는 데서도 알수 있다. 이 외에도 일본옷을 화복(和服), 일본과자를 화과자(和 菓子) 등이다. 헌데 이 화(和)자 앞에 큰 대(大)자 하나를 덧댄 대화(大和)는 '야마토'라 해서 교토 인근을 중심으로 했던 고대국가에서 출발해 3세기- 7세기 중엽 일본 영토의 대부분을 지배한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일본'이란 국호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용했던 말이다. 그랬던 만큼 '야마토'는 일본 자체를 상징하고 '야마토 정신(大和魂)'이라하면 일본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야마토'란 말이 언급된 한국어 노래가 일본 야구장, 고시엔(甲子園)에서 울려퍼지면서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국 3400여 개 고교가 참여한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중고생을 합쳐 160명뿐인 학교가 개교 이후 첫 우승을 한 것이다. 160명 초미니 민족학교가 멸시와 악조건을 견뎌내고 2,500명의 학교를 꺾고 승리한 기적이었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교토조선중학교에서 출발해 지금은 교토국제고로 바뀌었다. 2004년 일본인 학생 입학을 받은 후 학생의 70%는 일본계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공통의 꿈과 미래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우승 후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 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던 것이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 교가의 4절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있다. 한반도에서 동해를 건너 야마토 땅을 다스리던 훌륭한 선조들을 자랑스러워 하고 기개 넘치는 그 후손임을 다짐하는 긍지가 넘쳐 들린다. 고대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깊이 얽혀 있지만 한국내 사학계는 물론 정치권은 아직도 갇혀있는 역사관이나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음이 교토국제고 학생들만도 못하지 않나 싶어 안타깝다. 교토국제고 학생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2024-08-13 00:00:00
1851년 영국 런던에서 만국박람회(Expo)가 시작되었다. 당시 만국박람회는 자국의 최신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과시하는 일종의 국가 간의 산업화 경쟁의 장(場)이었다. 이에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야심차게 박람회를 열어 건물 전체를 유리만으로 지은 유리궁전(수정궁)을 지어 신건축을 자랑했다. 영국과 경쟁하던 프랑스는 이에 뒤질세라 여러번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1889년 에펠탑으로 수정궁을 능가하더니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한 철골구조에 대형돔과 유리로 덮은 아름다운 상징물을 설치하였다. 큰 궁전이란 뜻의 '그랑 팔레(Grand Palais)'다. 파리의 에펠탑과 함께 최대의 상징적 기념물이 된 이곳에 미국의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 기술 그리고 유럽의 무선통신과 전자파 및 자동차 기술, 퀴리 부부의 방사선 기술 등이 소개됐다. 이때 대한제국도 참가하여 경복궁 근정전을 닮은 2층 전시관을 지었다. 화려한 색을 입힌 목조건물에 하늘로 솟은 처마와 지붕으로 한국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선보였다. 그리고는 비단과 놋그릇, 도자기, 나전칠기와 공예품, 의복 등을 비롯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세계인들에게 처음 공개했으며 조선의 투구, 검, 화살통, 군복 등도 전시했다. 대한제국은 대상 1개와 금메달 2개를 포함 모두 21개를 수상했다. 박람회가 폐막되자 대한제국관은 헐렸고 그랑팔레는 1924년 파리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된 후 박물관(미술관)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다시 100년이 지난 올해 2024년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위해 개조되어 펜싱과 태권도 종목 경기장이 되었다. 비록 대한제국관은 없어졌지만 그 발자취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펜싱 사브르의 오상욱 선수가 한국의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100년을 이어온 호흡의 기운을 느끼는 듯 하다. 이어 사격과 양궁 등에서 연이은 금메달을 따내자 '금메달 세 개 땄는데 그게 칼, 총, 활이다. 무기의 나라, 전투의 나라'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어찌보면 그도 그럴 것이 삼국시대 이래 930여 차례에 이른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치루어야했던 끈질긴 전투력의 DNA가 형성되어서 일게다. 그 옛날 아시아 최강인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으며 거란족 요나라와 왜국 또한 물리쳤으니 태극전사란 호칭이 괜한 말은 아니다. 특히 한국 양궁은 '10년 연패'라고 하니 한 종목에서 무려 40여년을 지켜온 독보적 존재, '전설'을 넘어 '신화'라 아니할 수 없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다고 하더니 과연 활의 민족 후손답다. 여담이지만 그러고 보니 네티즌들이 표현한 태극전사들의 '칼, 총, 활'의 위업을 대하면서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지은 인류 문명에 대한 책 '총, 균, 쇠'가 떠오른다. 마치 '총, 균, 쇠'가 세상의 문명을 좌우했듯 이번 한국선수들이 대회 초기 기염을 토한 '총(銃), 궁(弓), 검(劍)'의 석권을 이야기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유일는지.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1900년 파리에서는 만국박람회와 함께 제2회 올림픽도 동시에 열렸다. 해서 당시 박람회와 더불어 올림픽에도 참가했더라면 일제강점기 이전에 자주 독립국가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세계 경기대열에 기록되어 우리의 올림픽 역사 이정표가 달라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또 누가 알랴? 메달 입상자라도 나왔다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는지? 태극전사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2024-07-30 00:00:00
대륙간의 교류가 오늘날처럼 긴밀하지 못했던 옛시절에는 지역마다의 문화나 특산물을 해외원정 후 혹은 외부인에 의해 소개되고서야 알게 됐는데 그나마 왕족이나 귀족들의 영유물이 되기 일수였고 후에 탐욕으로 인한 침략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과일도 마찬가지였다. 오렌지와 레몬, 바나나 등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 레몬은 장기간 항해에 문제였던 괴혈병을 막아주는 치료제로 알려지면서 더 멀리 더 오래 항해할 수 있게 해준 탓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의 해외 식민지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동남아가 원산지였던 바나나는 아랍 상인과 포르투갈 무역상들에 의해 카리브해까지 퍼지게 되었지만 착취의 대명사로 '바나나 공화국'이란 어두운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유럽 고급 레스토랑 테이블에 놓이는 파인애플은 환영의 메시지다. 그런 파인애플은 콜럼버스가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가져온 후 최고급품이 되다보니 귀족들이 돈을 내고 빌려와 파티에서 자랑한 후 돌려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세계사를 뒤흔든 25가지 과일'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렇듯 과일들의 전파와 교류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말해주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거리도 만들어냈다. 그 중 사막의 과일이었던 수박에 대해 한때 이런 농담도 있었다. 북한에서 겉만 빨갛지 속은 하얘서 반동으로 낙인된 사과와 달리 수박은 속이 온통 시뻘건 골수 공산당원을 의미한다는 말. 헌데 이 수박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 남북 전쟁 전에는 아프리카계 노예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팔던 대표적인 과일인 수박이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흑인 저소득층이 즐기는 과일이라는 편견으로 '흑인은 수박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같은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생겨나면서다. 해서 지난해 2월에는 뉴욕의 한 중학교에 급식으로 수박과 프라이드치킨을 제공한 식품회사가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고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보스턴 헤럴드가 그에게 '수박 향을 입힌 치약 써본 적 있냐'며 조롱하는 만화를 게재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던 거다. 이외에도 미국에 동화(同化)되면서 모국의 정체성을 잃은 아시아계를 '바나나'라고 지칭하는 건 다분히 피부색을 염두에 둔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말이다. 헌데 이와 유사한 단어로 '코코넛'이 있다. 주류 문화에 동화하기 위해 애쓰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계를 지칭하는 속어로 껍질이 갈색인데 속은 하얀 코코넛처럼 피부색은 아시아계이면서 백인처럼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이다. 헌데 이 단어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면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카멀라는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 연설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너희 젊은이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희가 방금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니?' 라고 했다며 호탕하게 웃은 적이 있었다. 젊은 세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앞선 세대가 일구어논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기존 세대와 연결돼 있음을 피력하려던 의도였지만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선 인도계인 카멀라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 이 단어가 어느 순간 부통령의 소탈한 모습으로 부각되면서 인터넷 '밈'으로 진화해 퍼지고 지지와 응원으로 변하고 있는 거다. '카멀라'라는 이름이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란 뜻이고 힌두교 행운의 여신의 별칭이라고 한다. 헌데 코코넛의 의미가 '유령머리'라고 하니 혹 누가 알랴? 귀신도 모를 일이 벌어질는지.
2024-07-16 00:00:00
역사적으로 성공한 군주는 대부분 충직한 신하의 보필과 현명한 부인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대표적 인물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정관의 치(貞觀之治)' 시대를 구가한 당 태종 이세민을 들 수 있다. 당태종은 형제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지난 잘못을 딛고 치세에 공을 들인 결과 중국뿐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거다. 그렇게 하기까지에는 백성을 섬기는 마음과 신하의 간언도 마다않는 자세 그리고 정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통합의 정치 등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이면에 있는 훌륭한 신하와 지혜로운 부인의 도움 무시 못한다. 그 충신 중 하나가 위징이다. 언제나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잘못을 지적하는 그의 직언이 얼마나 강했던지 한번은 당태종이 분노를 삭이지 못하며 그를 처형하겠다는 소리에 황후는 '신하가 굽히지 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폐하께서 명군이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추켜세움으로써 황제의 분노도 신하의 위기도 모두 피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당태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징 같은 신하의 직언과 간언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존중과 황후의 교만하지 않고 검소함, 백성을 배려하는 품성의 덕이었다. 허나 한비자는 군주를 망하게 하는 간신을 8가지로 분류한 '팔간(八奸)'에서 그 첫째가 '한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부인과 후궁들의 일명 '베갯머리 송사'를 가리키는 말일텐데 쓰기 나름일 것이다. 해서 '권력의 크기가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는 이유다. 이는 동서고금에 구분이 없을 게다. 그럼 미국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게끔 도와 칭송받는 영부인들은 누구며 그 반대는 누굴까? 미국은 영부인이 살기 쉽지 않은 나라다. 너무 앞에 나서 활동하면 '설쳐 댄다'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으면 '자리에 있는 거냐, 없는 거냐'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남편 뒤에서 도울 줄 아는 영부인상이 어디 그리 쉬울까? 그렇다 해도 FDR 프랭클린 루즈벨트 부인 엘리노어 여사는 '너무 나서는' 영부인으로 분류되면서도 워낙 훌륭한 일을 많이 한 탓 때문인지 오랫동안 미국인의 칭송 순위 1위다. 아동, 여성,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활동과 인권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쳤으며 소아마비로 휠체어 생활하는 남편을 대신해 전국을 누비며 국민들의 의견까지 들어서다. 이 외에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충실한 조언자이자 부인였던 에비게일 애덤스,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영부인 돌리 매디슨 등이 유명한데 특히 돌리 메디슨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백악관이 함락되기 직전 몸소 수많은 공문서와 서적 게다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까지 챙겨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이날 영국군은 백악관을 불질러버렸다. 그렇다면 반대로 최악의 영부인은 누굴까? 사치와 낭비벽에 빠져 대외활동을 가장 소극적으로 펼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부인 메리 여사가 꼽힌다. 링컨이 결혼식장으로 가면서 '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소'라고 자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헌데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루즈벨트와 링컨과 달리 두 영부인이 '최고'와 '최악'으로 엇갈리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헌데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토론대결 이후 인지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용퇴냐 사수냐'를 두고 말이 많은 가운데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목소리에 따라 좌우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서 '여사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만사여사(萬事女史)'가 떠 오르는 게 지나친 기우일까?
2024-07-01 00:00:00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책 중에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원래 4부로 된 것이지만 1부와 2부만을 묶어 아동용으로 먼저 출간되어 소인국과 거인국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료시킨 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화란 느낌과 달리 18세기 당시 영국의 정치와 사회를 향해 얼마나 신랄하게 퍼부은 풍자였던지 작가도 본명을 숨긴채 발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걸리버는 네 곳을 여행한다. 소인국, 거인국, 공중에 떠서 날아다니는 섬나라 그리고 말이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다. 소인국에서는 사기죄를 사형으로 다스린다. 사기를 절도보다 더 무거운 범죄로 보기 때문인데 공직에 사람을 뽑을 때도 능력보다는 도덕성을 중시한다. 온갖 술수로 부패하고 이를 숨기거나 옹호하는 행태가 공공 이익에 입히는 피해가 막대해서다. 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것이다.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는 영국의 우수성을 보이기 위해 왕에게 화약을 소개한다. 그러자 왕은 '그런 끔찍한 무기의 비밀을 아느니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영토를 넓히려는 유럽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제 3부, 세 번째로 도착한 섬은 자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섬이다. 이곳 사람들은 늘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일상과 동떨어져 쓸데없는 사색에 빠져 하인들이 막대기로 입이나 귀를 건드려줘야 알아챌 정도였다. 어쩐지 오늘날 스마트폰에 몰입되어 있거나 이어폰을 끼고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다녀 큰소리를 내거나 이어폰을 빼게 해야 비로소 돌아다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제 문명과 지식, 삶의 부조리를 비판하던 소설은 마침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단계로 들어간다. 마지막 4부, 말이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에서다. 말을 예의 바르고 악의나 질투를 모르는 이성을 가진 존재로 '후이늠(Houynhnm)'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서는 온갖 범죄와 권력과 부를 향한 탐욕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간은 교활하고 간사하며 배반과 거짓말을 잘하고 복수심과 욕망도 강해 걸핏하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가장 악한 짐승으로 취급한다. 또한 탐욕스러운 습성이 있어서 모두가 충분히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많은 먹이를 줘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가 하면 명백한 이유도 없이 서로 싸움을 한다며 극도로 경멸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영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성적인 척하며 온갖 혐오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행태를 극악무도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타고난 야만성보다 정신적 타락이 더 나쁜 것이기 때문이란 이유다. '후이늠' 나라에서 혐오하고 경멸하는 인간 짐승을 '야후'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온라인 검색사이트의 이름, '야후(Yahoo)'가 여기서 나왔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근래에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압박한다는 문제로 뜨거운 국내외 여론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네이버 라인야후 서버가 사이버 공격으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두 차례 행정지도 실시와 구체적인 대응책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국민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따른 후속조치라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차별적 조치이며 한국이 개발해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라인을 네이버로부터 빼앗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걸리버는 '후이늠'과 '야후'를 통해 인간세계를 돌아다 본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세계는 인간들이 이성을 바탕으로 이룩한 문명화된 세상이었지만 그 내면은 야후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이 넘치고, 귀족은 게으르고 사치스럽게 살며,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는 세상. 편가르고 싸우는 정치와 일상, 거짓이 부끄럽지 않은 세태. 거기에 끊이지 않는 전쟁까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인 '늑대'처럼 불린 인간 짐승 야후. 애초에 야후가 아니라 흐이늠이라고 이름지었더라면 달랐을까? 라틴어 경구가 떠 오른다. 'Homo homini lupus est.'(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성하다.'(Homo homini sacra res)
2024-06-17 00:00:00
중국적 이미지를 잘 나타낸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패왕별희'일 것이다. 전통 예술 경극(京劇)을 소재로 중국 고대와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정치와 예술을 함께 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비극적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이 작품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떠난 배우 장국영 때문이기도 할 게다.
2024-06-03 00:00:00
동화작가 안데르센 자신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여기는 인어공주는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명작이다. 먼 바다의 왕에게는 아름답고 예쁜 마음씨를 가진 여섯 명의 인어공주가 있었다. 그 중 호기심 많으며 사려 깊은 막내 공주가 어느 날 바다 바깥세상으로 올라와 구경하던 중 배 갑판 위에 있는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2024-05-20 00:00:00
결혼식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예비 신랑이 그만 세상을 뜬다. 홀로 남은 약혼녀는 하얀색 드레스 대신 검은색 옷을 입고 장례를 치르게 됐다. 행복을 꿈꾸었던 사랑이 영원한 이별로 끝난 것이다.
2024-05-01 00:00:00
젊은 법률가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만난 로테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맺어 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그는 다른 나라로 떠나보지만 그곳에서 귀족들의 폐습만을 경험한 채 실망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로테와 그녀의 약혼자 사이에서 치정 끝에 그녀가 절교를 선언하자 절망에 빠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2024-03-18 00:00:00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4 년 소련의 타이푼급 신형 전략 미사일 핵잠수함인 붉은 10 월 호(Red October)가 첫 항해를 시작했다. 허나 이 항해는 소련에 환멸을 느낀 해군 최고의 잠수함장 라미우스(Marin Ramius) 대령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밀하게 세운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후 이를 알아챈 소련 당국은 붉은 10 월호를 격침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보내고 어뢰 공격을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소련은 정부에 반기를 든 미친 함장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려는 것이라고 거짓말로 알리면서 격침하라고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