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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감성터치

목사

  • 다음 세대를 위한 무대를 만들자

     얼마 전 어느 기독교 방송사의 창립 기념행사가 있었다. 창립감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송 체계를 도입하고 그것을 감사하는 뜻 깊은 감사예배와 축하 행사였다. 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금번 감사예배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통상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서인 축사나 격려사도 좋았다. 심지어 참석자들에게 전하는 답례 선물도 좋았다. 그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 없는 깔끔하고 세련된 프로그램이었다. 


  • 희생을 존중하는 사회

     1998년 워싱턴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 안장식에 참석했었다. 당시 나를 호스팅 해 주었던 미 해군 대령(예) 가이 제렛(Guy Jarret)과 함께 참석한 안장식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안장식 주인공은 미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미 해병 소위였다. 베트남에서 그의 유해가 발굴됐고 송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 인문학과 이준석

     손자가 대학 갈 때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꼭 권하고 싶은 대학이 있다. 세인트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이다. 천주교 대학교인 세인트존스 대학(St. John’s University)와는 다른 학교다. 대학에 재학하는 4년간 중요한 과제가 인문학 고전 독파다. 미국 대학 수준을 평가하는 기관마다 이 세인트존스 대학을 높게 평가한다.


  • 행복 프레임! 

     요즘 잘 팔리는 책이 등장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10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불경기로 허덕이는 출판계와 서점가에 희소식이다. 그런데 그 책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요란하다.


  • 신앙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영불(英佛)의 백년 전쟁 때 프랑스의 칼레 시는 영국군에 포위되었지만 완강히 저항하다 11개월 만에 항복했다. 칼레 시의 완강한 저항에 분노했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한 가지 조건만 제시했다. 칼레의 지체 높은 시민 6명이 맨발에 속옷만 입고 목에 밧줄을 감은 채 성 밖으로 나와 성문 열쇠를 바치면 6명을 교수형 시키는 대신 모든 시민들을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았었다. 그때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가 일어나 “내가 그 중 하나가 되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뒤이어 시장·법률가 등 귀족 5명이 앞으로 나왔다.


  • 경주 최부자와 노블리스 오블리제   

    우리 역사에 가장 유명한 부자는 경주 최씨 집안입니다. 신라의 최고 문장가 최치원 후손입니다. 최치원 17대손 최진립과 그의 아들 최동량이 큰 재산을 모았고, 28대손 최준까지 12대 300여 년에 걸쳐 조선 최고의 부자라는 명성을 누렸습니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는데 12대에 걸쳐 300년간 만석(萬石)군 자리를 지켰습니다. 


  • 기도의 유산

     영국의 윈스톤 처칠 수상은 그의 '전쟁 회고록'에서 1940년 9월15일이 영국이 독일과의 공중전에서 특별한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독일 공군기와 폭격기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영국은 거의 방어수단이 없어서 속수무책이었다고 합니다.


  • 내일은 오늘의 열매

     워싱턴에 가면 꼭 방문하는 곳이 있다. 2차 대전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몇 번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워싱턴 방문 때마다 안내해 주었던 Guy Jarret 대령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유대인의 고통과 역사의식을 소개해준다. 들을 때마다 새롭고 흥미롭다. 


  • 까뮈의 고발…'오해' 

     중부 유럽의 한적한 시골, 평화롭게 흐르는 강 언덕에 세워진 여인숙을 모녀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모녀는 돈을 벌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과 오빠를 기다리며 여인숙을 운영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모녀들에게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모녀는 아들과 오빠를 기다리며 가난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여인숙 투숙객 가운데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의 음식에 독약을 타 먹여 죽인 뒤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금품과 재물을 챙기는 짓을 했다. 


  • 영원한 내 집의 '입주권'

     올망졸망 아이들 넷을 거느린 부부는 30만 원짜리 전세살이를 했다. 셋방 설움을 겪으며 부부는 셋방살이 탈출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맨다. 아내는 비닐봉투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아 강냉이로 바꾸어 얘들 간식을 준비하고 목욕탕 갈 때도 비누를 들고 가지 않고 목욕탕 바닥의 쓰다버린 비누 조각을 주워 썼다. 그러나 월급쟁이가 목돈을 모으기가 녹록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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