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격전지 투입될 듯…러 인해전술로 대규모 사상자 우려

관련 당사국 속속 '파병' 확인…러도 부인안해. 北은 침묵 일관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기자 =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설(說)'에서 '사실'로 굳어졌다. 북한이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러시아 측이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외무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파병을 부인했다.

앞서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사실을 공개한 후 닷새 만인 23일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잇따라 이를 공식 확인하자 푸틴도 더는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이제 관심은 북한군이 실제 우크라이나전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쏠린다.

◇ 우크라가 점령한 쿠르스크 등 격전지 투입 가능성

1차로 파병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전 격전지 중 하나인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언론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24일 우크라이나 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 약 2천명이 훈련을 마치고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서부로 이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와 로스토프주로 항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쿠르스크에 배치된 북한군이 23일 목격됐다는 우크라이나 매체의 보도도 있었다.

앞서 미국 포린폴리시(FP)도 23일 러시아가 이르면 내달 북한군을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해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는 데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쿠르스크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이 처음으로 점령한 러시아 영토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8월에 이 지역을 기습 공격해 한때 서울시 면적(605㎢)의 배가 넘는 1천250㎢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9월 이후로는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조금씩 내주는 등 양측 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 미 "북한군, 정당한 표적"…"총알받이 용병에 불과"

최근 몇 달 새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군 사상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장에 투입될 북한군의 희생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존 커버 백악관 국가안보 소통보좌관은 23일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싸우는 데 배치된다면 정당한 표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래 지난달 최다 사상자를 냈다. 하루 평균 1천271명으로 종전 최고 기록인 지난 5월의 1천262명을 넘어섰다.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으로 점령당한 쿠르스크의 탈환과 돈바스 등 동부 전선 우세 확보를 위해 공세를 강화하면서 전력 손실이 컸다.

특히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 방어 진지를 돌파하기 위해 보병 다수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인해전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는 최근 SBS와 인터뷰에서 "북한군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진지를 돌파하고 점령하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병사들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상자 비율이 90%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파병'이 아니라 '용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통상 파병은 파병국 군대의 지휘체계가 유지되고 파병국의 군복과 표식, 국기를 달고 활동하는데 북한은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의 통제하에 아무런 작전 권한도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북한군은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정원도 북한군이 현대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 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 용병 수준 월 급여 '2천 달러' 수령 관측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군의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궁핍한 경제에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새로운 '돈줄'을 잡았다.

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전투 병력을 보냄으로써 얻게 될 이득 가운데 '외화벌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 매체를 중심으로 파병 북한군이 받을 '월급'에 관한 보도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도 구체적인 숫자가 나왔다.

국정원은 이날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군 규모가 현재까지 3천여명이고, 오는 12월까지 파병 규모가 총 1만여명이 될 것이라면서 북한군이 이번 파병에 대한 대가로 1인당 월 2천달러(약 277만원)가량 받는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급여는 북한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이다.

지난 7월 발표된 한국은행의 '2023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경제가 4년 만에 성장했다고는 하나 국민총소득(GNI)이 40조9천억원으로 남한(2천443조3천억원)의 약 60분의 1인 1.7% 수준에 불과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58만9천원으로 4천724만8천원인 우리의 30분의 1(3.4%) 정도다.

지난해 북한의 1인당 GNI를 한 달 치로 환산하면 13만2천400원 수준인데 이것의 20배가 넘는 돈을 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월급으로 받는 셈이다. 아직 파병 규모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순히 1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만 277억원을 북한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받는다. 파병 북한군이 얼마나 주둔할지 모르지만 1년으로 계산하면 3천300억원이 넘는다.

앞서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러시아의 외국인 용병에게 지급되는 월급이 2천∼2천300달러라며 북한군도 비슷한 액수를 월급으로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러시아에 파병된 외국인 용병의 월급이 대체로 2천달러 정도라고 했다.

여러 관측을 종합해볼 때 전장으로 내몰린 북한 젊은이들의 '목숨값'이 최소한 월 2천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의 오랜 대북 제재 속에 자력갱생을 외쳐왔지만, 최근 몇 년 새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으로선 러시아 파병이 당장 거액의 외화벌이가 가능한 좋은 방편이 된 것이다.

bo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