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한국에선 로스쿨 응시할 때 부모의 직업을 써 넣는 것 때문에 말썽을 빚고 있는가 보다. 현대판 음서제니 신판 금권에 의한 차별이니 말이 많다. 허나 부모의 직업을 밝히는 건 새로운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 한국이 무척 가난했던 시절, 초중고 학교에서 써내라는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게 있었다. 집안의 살림살이를 조사해서 무엇 하겠다는 거였는지 흑백텔레비전조차 거의 없던 시절에 TV가 있는지 라디오가 있는지 또 무슨 신문을 구독하는 지는 물론 온 집안의 내용을 다 써야 했다. 그 것 뿐 아니다. 식구들 이름과 학력 직업 등 인적사항도 몽땅 적는데 아버지의 직업 또한 빠지지 않았다. 가슴에 열쇠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팔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초등학교 문 앞이나 뒷문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국자에 설탕을 녹여 각종모양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우린 그들을 열쇠장사와 또 뽑기 장사라 불렀지만 정작 본인들은 도난방지 주식회사와 제당업자라고 불렀다는 우스개소리가 그것이다. 허나 정말 웃어버릴 만은 아닌 일이 벌어졌다. 인천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아이가 아버지의 직업란에 '사과장수'라 썼다. 그 후 그 아이는 담임의 눈에서 벗어나 교실 가장자리에 앉아야했고 은근히 차별을 받았다. 헌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아이의 아버지가 사과를 파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선생님이 생각한 그런 장사가 아니라 경기도에서 제일 큰 사과도매업을 하는 큰 부자였던 거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선생님은 아이의 자리를 부랴부랴 앞으로 옮겨주는 등 하루아침에 대우가 달라졌다는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우리는 사람보다는 직업을 그리고 이름보다도 그의 직함을 더 중시하는 문화관습에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면 집사가 붙어야하고 동네에서도 사장님 정도는 붙어야 살맛이 난다. 그렇지 못하면 기분이 상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사소한 시비의 70%가 상대에 대한 호칭문제에서 시작 된 것이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 지 어려울 때가 많은 걸 동감 할 것이다. 좀 비약해서 말하면 상대와의 초전 탐색전에서 기선제압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아주 부인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의식구조가 우리와 다른 서구는 별 문제가 없어 비교적 간단하다. 허나 우리만큼 심각하지는 않아도 그들에서도 비슷한 예는 있다. 바텐더는 '믹솔러지스트'라고 한단다. 섞는다는 '믹스(mix)'에 학문을 뜻하는 '-올로지(-ology)'붙인 단어다. 어딘가 모르게 고학력 냄새가 묻어나기 때문일 게다. 허나 서구는 주로 개인적인 직업이나 우열문제보다는 인권차별에 따른 사회적인 면에 더 초점을 맞춘다.'핸디캡'을 'disabled'로 바꾸는 것 등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이러한 호칭을 바꾸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단어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사고자세와 의식의 변화일 게다. 차별의식이 아니라 남이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할 줄 아는 구별의식 말이다.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호칭 하나에도 그 안에 들어있는 차별의식이나 낙인으로 사람의 인격과 품위가 손상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