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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준철의 ‘시쓰고 중얼중얼’

  • 남은 사랑을 끝내야 할 때

    곽효환   시린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많은 날들까지 멈추지 않는 눈물과 더는 흐르지 않을 눈물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은 참는 것 견디는 것 기다리는 것 침묵하는 것 무심해지는 것 괜찮아, 라고 말하지 않는 것 괜찮아질 거야, 라고 믿지 않는 것 그렇게 다시 그렇게 먹먹한 가슴에 슬픔을 재우고 돌이 되는 것 그리고 힘들게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남은 사랑을 접는 것 단호하게 그렇게 끝내는 것


  • 주머니 속의 손

    앞서 나가며 당신이 우셨습니다 빠알갛게 충혈된 눈으로 쌓인 말 체 잇지도 못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훔치는 당신의 손을 차마 잡을 수 없어 주머니 깊숙히에서 가늘게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 달에 관한 명상

    류시화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안에 언제나 빛날 수 있는 너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를


  • 하루가 산다

    하루가 하루를 덮고 그 하루가 다른 하루를 녹이고 또 하루가 그걸 채우고 비우고 지우고 어느 하루는 기억이 되고 그 하루는 저 하루를 위로하고 그다음 하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다독 하루의 허락으로 또 하나의 하루를 사는


  • 겨울을 묻으며

      거울 속에 겨울이 비친다 살얼음으로 불안스레 굳어있는 풍경이 거기 있다 잡음처럼 겨울비가 내리고 거울이 녹아 내린다


  • 겨울 바램

      숨 쉬는 것들은 마지막 겨울 바람 앞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꾸만  춥다고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이들의 울음소리가


  • 내 안에 우는 눈이 있다

                                                              문정희


  •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목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너의 울음소리는 나와 다르다

    높게 시작해 꺽이듯 올라가다 멈춰 버리는 나와 달리 낮게 시작해서 더욱 깊이 잠겨드는 너 행여 이 슬픔이 깨질까 혹여 누군가에게 묻을까


  • 빈 냉장고

    텅 빈 냉장고는 서늘하다 맥 빠진 성욕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말간 눈빛이 텅 빈 자신의 몸 속을 비추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몸은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밀폐된 냉기 속에 갇혀 미이라처럼 변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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