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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의 世上萬事

치과의

  • 퍼스트 레이디

       역사적으로 성공한 군주는 대부분 충직한 신하의 보필과 현명한 부인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대표적 인물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정관의 치(貞觀之治)' 시대를 구가한 당 태종 이세민을 들 수 있다. 당태종은 형제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지난 잘못을 딛고 치세에 공을 들인 결과 중국뿐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거다.   그렇게 하기까지에는 백성을 섬기는 마음과 신하의 간언도 마다않는 자세 그리고 정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통합의 정치 등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이면에 있는 훌륭한 신하와 지혜로운 부인의 도움 무시 못한다.    그 충신 중 하나가 위징이다. 언제나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잘못을 지적하는 그의 직언이 얼마나 강했던지 한번은 당태종이 분노를 삭이지 못하며 그를 처형하겠다는 소리에 황후는 '신하가 굽히지 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폐하께서 명군이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추켜세움으로써 황제의 분노도 신하의 위기도 모두 피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당태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징 같은 신하의 직언과 간언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존중과 황후의 교만하지 않고 검소함, 백성을 배려하는 품성의 덕이었다.     허나 한비자는 군주를 망하게 하는 간신을 8가지로 분류한 '팔간(八奸)'에서 그 첫째가 '한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부인과 후궁들의 일명 '베갯머리 송사'를 가리키는 말일텐데 쓰기 나름일 것이다. 해서 '권력의 크기가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는 이유다.    이는 동서고금에 구분이 없을 게다. 그럼 미국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게끔 도와 칭송받는 영부인들은 누구며 그 반대는 누굴까? 미국은 영부인이 살기 쉽지 않은 나라다. 너무 앞에 나서 활동하면 '설쳐 댄다'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으면 '자리에 있는 거냐, 없는 거냐'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남편 뒤에서 도울 줄 아는 영부인상이 어디 그리 쉬울까? 그렇다 해도 FDR 프랭클린 루즈벨트 부인 엘리노어 여사는 '너무 나서는' 영부인으로 분류되면서도 워낙 훌륭한 일을 많이 한 탓 때문인지 오랫동안 미국인의 칭송 순위 1위다. 아동, 여성,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활동과 인권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쳤으며 소아마비로 휠체어 생활하는 남편을 대신해 전국을 누비며 국민들의 의견까지 들어서다.     이 외에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충실한 조언자이자 부인였던 에비게일 애덤스,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영부인 돌리 매디슨 등이 유명한데 특히 돌리 메디슨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백악관이 함락되기 직전 몸소 수많은 공문서와 서적 게다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까지 챙겨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이날 영국군은 백악관을 불질러버렸다.   그렇다면 반대로 최악의 영부인은 누굴까? 사치와 낭비벽에 빠져 대외활동을 가장 소극적으로 펼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부인 메리 여사가 꼽힌다. 링컨이 결혼식장으로 가면서 '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소'라고 자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헌데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루즈벨트와 링컨과 달리 두 영부인이 '최고'와 '최악'으로 엇갈리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헌데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토론대결 이후 인지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용퇴냐 사수냐'를 두고 말이 많은 가운데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목소리에 따라 좌우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서 '여사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만사여사(萬事女史)'가 떠 오르는 게 지나친 기우일까?  


  • 인간 짐승 '야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책 중에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원래 4부로 된 것이지만 1부와 2부만을 묶어 아동용으로 먼저 출간되어 소인국과 거인국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료시킨 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화란 느낌과 달리 18세기 당시 영국의 정치와 사회를 향해 얼마나 신랄하게 퍼부은 풍자였던지 작가도 본명을 숨긴채 발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걸리버는 네 곳을 여행한다. 소인국, 거인국, 공중에 떠서 날아다니는 섬나라 그리고 말이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다. 소인국에서는 사기죄를 사형으로 다스린다. 사기를 절도보다 더 무거운 범죄로 보기 때문인데 공직에 사람을 뽑을 때도 능력보다는 도덕성을 중시한다. 온갖 술수로 부패하고 이를 숨기거나 옹호하는 행태가 공공 이익에 입히는 피해가 막대해서다. 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것이다.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는 영국의 우수성을 보이기 위해 왕에게 화약을 소개한다. 그러자 왕은 '그런 끔찍한 무기의 비밀을 아느니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영토를 넓히려는 유럽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제 3부, 세 번째로 도착한 섬은 자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섬이다. 이곳 사람들은 늘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일상과 동떨어져 쓸데없는 사색에 빠져 하인들이 막대기로 입이나 귀를 건드려줘야 알아챌 정도였다. 어쩐지 오늘날 스마트폰에 몰입되어 있거나 이어폰을 끼고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다녀 큰소리를 내거나 이어폰을 빼게 해야 비로소 돌아다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제 문명과 지식, 삶의 부조리를 비판하던 소설은 마침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단계로 들어간다. 마지막 4부, 말이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에서다. 말을 예의 바르고 악의나 질투를 모르는 이성을 가진 존재로 '후이늠(Houynhnm)'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서는 온갖 범죄와 권력과 부를 향한 탐욕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간은 교활하고 간사하며 배반과 거짓말을 잘하고 복수심과 욕망도 강해 걸핏하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가장 악한 짐승으로 취급한다. 또한 탐욕스러운 습성이 있어서 모두가 충분히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많은 먹이를 줘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가 하면 명백한 이유도 없이 서로 싸움을 한다며 극도로 경멸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영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성적인 척하며 온갖 혐오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행태를 극악무도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타고난 야만성보다 정신적 타락이 더 나쁜 것이기 때문이란 이유다.   '후이늠' 나라에서 혐오하고 경멸하는 인간 짐승을 '야후'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온라인 검색사이트의 이름, '야후(Yahoo)'가 여기서 나왔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근래에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압박한다는 문제로 뜨거운 국내외 여론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네이버 라인야후 서버가 사이버 공격으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두 차례 행정지도 실시와 구체적인 대응책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국민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따른 후속조치라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차별적 조치이며 한국이 개발해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라인을 네이버로부터 빼앗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걸리버는 '후이늠'과 '야후'를 통해 인간세계를 돌아다 본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세계는 인간들이 이성을 바탕으로 이룩한 문명화된 세상이었지만 그 내면은 야후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이 넘치고, 귀족은 게으르고 사치스럽게 살며,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는 세상. 편가르고 싸우는 정치와 일상, 거짓이 부끄럽지 않은 세태. 거기에 끊이지 않는 전쟁까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인 '늑대'처럼 불린 인간 짐승 야후. 애초에 야후가 아니라 흐이늠이라고 이름지었더라면 달랐을까? 라틴어 경구가 떠 오른다. 'Homo homini lupus est.'(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성하다.'(Homo homini sacra res)   


  • 여섯 손가락

    중국적 이미지를 잘 나타낸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패왕별희'일 것이다. 전통 예술 경극(京劇)을 소재로 중국 고대와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정치와 예술을 함께 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비극적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이 작품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떠난 배우 장국영 때문이기도 할 게다.


  • 목소리

      동화작가 안데르센 자신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여기는 인어공주는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명작이다. 먼 바다의 왕에게는 아름답고 예쁜 마음씨를 가진 여섯 명의 인어공주가 있었다. 그 중 호기심 많으며 사려 깊은 막내 공주가 어느 날 바다 바깥세상으로 올라와 구경하던 중 배 갑판 위에 있는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 트럼프의 '허시 머니' 

    결혼식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예비 신랑이 그만 세상을 뜬다. 홀로 남은 약혼녀는 하얀색 드레스 대신 검은색 옷을 입고 장례를 치르게 됐다. 행복을 꿈꾸었던 사랑이 영원한 이별로 끝난 것이다. 


  • '극단적 선택'

    젊은 법률가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만난 로테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맺어 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그는 다른 나라로 떠나보지만 그곳에서 귀족들의 폐습만을 경험한 채 실망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로테와 그녀의 약혼자 사이에서 치정 끝에 그녀가 절교를 선언하자 절망에 빠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 치킨게임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4 년 소련의 타이푼급 신형 전략 미사일 핵잠수함인 붉은 10 월 호(Red October)가 첫 항해를 시작했다. 허나 이 항해는 소련에 환멸을 느낀 해군 최고의 잠수함장 라미우스(Marin Ramius) 대령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밀하게 세운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후 이를 알아챈 소련 당국은 붉은 10 월호를 격침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보내고 어뢰 공격을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소련은 정부에 반기를 든 미친 함장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려는 것이라고 거짓말로 알리면서 격침하라고 주문한다. 


  • 마사리크와 이승만

    1919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3.1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이승만이 임정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이 곳 미국에서는 ‘제1차 한인자유대회 (FIRST KOREAN CONGRESS)’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 '기억'과 '망각'

    아인슈타인이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던 중 차장이 검표하러 왔다. 헌데 주머니와 가방 모두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차장이 ‘모두가 아는 분이니 괜찮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이 의자 밑까지 더듬으며 당황해하는 모습에 재차 걱정말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거 아니오?’. 


  • '성난 사람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명문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형들은 당대의 재사였고 동생 허난설헌은 시와 그림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또한 조선에 천주교를 소개한 선각자이자 대실학자이기도 했지만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나고 왕권과 고루한 사회체제에 도전한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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