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인은 누구일까. 아담의 아내 이브다.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약성서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인은 요셉의 아내 마리아다. 며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갈등을 빗댄 우스갯소리지만 부끄러운 한국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딸의 손에는 물이 묻지 않아야 기쁘지만 며느리 손이 깨끗하면 화가 나는 것이 시어머니의 마음이라 한다. 반면에 며느리의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는 항상 잔소리하고 참견하는 못마땅한 상대라고 한다. 시어머니가 미워서 '시'자가 붙은 시금치조차 안 먹는다고 하니 오죽할까. 그래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두 여인의 화합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온 유럽을 통합하는 것이 더 훨씬 쉽다고도 말했는가 보다. 옛날에 한 모자가 살고 있었는데 며느리를 얻었다. 그러다가 아들이 오랫동안 먼 곳으로 일을 가게 되자 시어머니의 구박이 심해졌다. 어느 날인가 밥이 잘 되었나 보려고 솥뚜껑을 열고 밥알 두 개를 먹어 보았는데 이것을 본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달려와 '어른보다 먼저 밥을 쳐 먹는다'며 마구 때렸다. 며느리는 병들어 죽었다. 남편이 돌아와 슬피 울며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 곳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꽃잎은 마치 벌린 입술처럼 열려 있고 그 사이로 두 개의 하얀 밥알 같은 것이 보여 사람들은 이를 며느리 밥풀 꽃이라 불렀다 한다. 남성위주사회에서 여성들은 억눌리고 힘들게 수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오늘의 시어머니들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막차를 탄 격이 되어 버렸다. 며느리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만만치 않은데다가 내 것이라고 여겼던 아들은 샘이 나도록 며느리와 더 가깝다. 결국 자신만 소외된 것 같아 속상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들지만 그나마 악착같이 버텨보려는 보상심리와 시기가 시어머니들로 하여금 이토록 처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어찌 본시부터 모든 시어머니들의 마음이 다 그랬으랴. 어쩌면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내보인 표현과 방법이 서투르다 보니 그렇게 나온 것이었겠지. 그래서 아랫목에서 들으면 시어머니의 말이 옳고 윗목에서 들으면 며느리 말이 맞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이렇게 서로 미움의 골이 깊어지면 그 사이에서 마음 다치는 것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요, 나의 남편뿐. 혼인은 다른 가문의 풍습과 새로 익혀야 하는 분위기로 이주하는 것이다. 한 가문에 다른 성씨의 여자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고 남자는 사위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서로 융합하고 어울린다. 이는 마치 우리가 새로운 환경과 낯설은 문화의 다른 나라로 이민 오는 것과 같을 게다.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얼굴색이 다르고 살아온 관습과 신앙이 달라도 시집가고 장가들 듯 새 터전의 말을 배우고 익히면서 법과 질서에 따라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고유의 풍습을 잃지 않고 지키며 긍지도 갖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나라를 존중하고 이 나라는 우리를 구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합중국처럼 합심가정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미국이 야속해지면 '미'자가 들어간 '미움'을 버리고 시어머니가 미워지면 '시'자가 들어 있는 '시기'를 서로 버려보자. 그리고 예쁜 며느리의‘며’자가 들어간‘면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면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