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 한글날이었다.
'해동육용(海東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이 동부(同符)하시니…'용비어천가 제1장의 노래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4대 왕이신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지은 글들 중의 하나로 조선창업의 정당성과 선조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중국의 옛 성군들과 견주어 찬양한 노래다. 여섯 마리 용은 태조 이성계와 그의 조부 4분(목조, 익조, 도조, 환조) 그리고 태종 이방원까지 6명을 말한다.
불현 듯 이를 미국에 대입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대륙구취(大陸九鷲)가 나라샤 일마다 대박이시니 고제(古帝)와 부동부(不同符)하시니…'미국도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이전에 이미 7명의 대통령이 있었으니 토머스 제퍼슨까지 9명의 백두독수리가 날아올라 옛 대영제국의 제왕들과는 결연하고 새로운 체제의 국가로 나래를 펼친 노래'취비통천가 (鷲飛統天歌)'제1장인 셈이다.
미국은 건립 후 영국왕정이나 귀족정치에 진절머리를 내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평등권, 생득권, 독립권을 갖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버지니아 권리선언까지 만들고 새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 워싱턴이 공식적 초대 대통령으로 기록된 것이니 가히 대륙국의 제1대 '태조'일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7개 국어에 능통하고 건축사이자 문학적 재능도 우수하고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맡는 등 그야말로 건국기초를 다지는데 대활약을 담당했으니 제3대 '방원'태종이 제격이다.
자신의 영지에 몬테첼로 저택을 지어 오늘날 5센트 니켈의 뒷면에 올리는 실력을 보이기도 한 그는 또한 묘비명도 스스로 썼는데 "독립선언문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자유법 작성자, 버지니아대학 설립자인 토마스 제퍼슨이 여기에 묻히다"라고
그리곤 유족들에게 "단 한단어도 더 첨가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대통령 경력은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후 오늘날 까지 43명의 인물이 44대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미국은 연임을 해도 그냥 같은 대(代)로 머물지만 22대와 24대의 Grove Cleveland는 한사람 건너 중임을 했기 때문에 대(代)수가 하나 더 계산되었다.)
이제 45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헌데 어쩐 일인지 이번 대선은 거짓말쟁이와 속임수에 능한 인물의 대결로 역대 중 최악으로 불리고 있다. 더구나 왕정에 항거하고 민주평등의 정신을 그 제일의 기치로 내걸었던 것과 달리 정치가문의 왕조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예로부터 군왕이 되기 위해서는 피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정난(政亂)도 마다하지 않기도 하지만 무릇 한 나라의 군주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해서 군주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스스로 반성하며 백성을 잘 다스려 나라를 잘 보전하는 것이라 했다. 허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 와서도 다르지는 않을 터. 그러나 작금의 나라님들은 비난과 책임전가만을 앞세우며 점점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용비어천가는 마지막 125장에 이런 글귀로 권계하고 있다. '성군(聖君)이 니샤도 경천근민(敬天勤民)하샤 더욱 구드시리이다.'(훌륭한 왕이 대를 이어도 경천근민해야 국가가 더욱 굳건해 질 것이다.)
하물며 자질 부족의 인물들이 나서는 오늘에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2016-10-1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