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옛날 어느 나라에 욕심 많은 임금이 있었다. 특히 나라를 돌보는 일보다 새 옷을 입고 뽐내기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신하들은 임금 앞에서는 새 옷을 칭찬했지만 돌아서면 흉을 봤다. 하루는 거짓말쟁이 재봉사와 그의 친구가 임금을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헌데 이 옷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것이라고 하자 임금은 몹시 기뻐했다.
옷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은 베틀을 놓고 옷감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틀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열심히 베 짜는 시늉만 했다. 새 옷이 궁금해진 임금은 신하들에게 두 사람이 작업하는 것을 살피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리석음이 탄로 날까 두려워 멋진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거짓말하였다. 얼마 시간이 흐른 후 두 사기꾼이 임금에게 옷이 완성되었다며 가져왔는데 옷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임금은 어리석음을 숨기기 위해 옷이 보이는 척했다.
결국 임금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새 옷을 입고 거리행진에 나섰다. 길가에 나온 군중들도 모두 임금님의 옷이 멋있다고 칭찬했다. 그때 그 모습을 본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다.
180년 전에 발표된 이 동화가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되었다. 온갖 비리와 혐의가 훤히 발가벗겨졌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격도 없으면서 어리석음을 감추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여왕님의 기이한 행태에 동화 속 어린아이가 그랬듯이 군중들이 외쳐대고 있는데도 모른 체한다.
그 이름 하여 가로대 '길라임(吉裸恁)'이란다. 그 뜻이 '벌거벗었는데도(裸) 좋다고(吉) 생각한다(恁)'는 것을 알기라도 할까?
주위의 신하들은 이제 오랏줄에 묶이자 저 살자고 한결같이 입 모아 주군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더욱이 웃지 못 할 일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서도 대역배우로 굿굿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흉내 내 오늘의 박라임은 대역의 자리도 마다 않고 스스로 자청해서 뻔뻔하게 지켜왔다는 슬픈 현실이다.
그리고 불쌍한 백성들은 간신히 정신 들어 촛불 들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서로 위안하며 기운 차리려는데 이젠 벌거벗은 여왕과 보이지도 않는 옷자락을 잡고 있는 충견무사들이 그것마저 바람 불어 끄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헌데 이 와중에 박라임을 극진히 아끼는 대변자가 나타나서는 한다는 말이 발가벗은 건 여성의 사생활이니 그 점 생각해 달란다. 훔쳐보지 말라는 소린가? 아니 못 본 척 하란 소린가? 온통 사이비가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오래 전 유행하던 노래가 다시 귓전을 친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2016-11-2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