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로마 건국신화에 보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쌍둥이 형제이야기가 나온다. 후에 장성한 이들은 나라를 세울 때 의견이 충돌한다. 이 때문에 결국 형이 동생을 죽이면서 고대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오이디푸스는 우연히 테베의 왕이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운명을 저주하며 두 눈을 스스로 찔러 장님이 된다. 그 후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로부터 쫓겨나면서 저주를 남긴다. 그의 저주대로 두 아들은 왕위를 놓고 싸우다 서로 죽인다.
이렇듯 친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신화에도 나올 만큼 그 뿌리는 깊고 참담하다.
허나 실제 이 말은 조조의 두 아들 조비와 조식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위나라 조조의 장남 조비는 전장에서 많은 공을 쌓았다. 그러나 뛰어난 문재(文才)로 조조의 총애를 받는 아우 조식을 늘 경계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조비는 조식을 죽이려했다.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죽게 된 조식은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를 짓는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본래는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결국 조비는 조식을 죽이지 못한다. 허나 인류역사에서 형제를 살해하는 권력암투는 이렇게만 끝나지는 않는다.
중국인들은 수많은 왕조 중에서 당나라에 가장 자부심을 느낀다. 한족의 왕조라는 정체성도 그렇지만 화려한 문물과 국위를 떨쳐 당시 이슬람제국과 함께 세계 2대 초강대국으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그런 당나라를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태종 이세민이다. 해서 그의 연호인 정관(貞觀)에서 딴 '정관의 치(治)'는 이상정치와 최고의 태평성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치적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어둠의 역사가 있다. 이세민이 황제가 되기 위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과 동생을 죽였던 거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성혁명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새 국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 이에 못지않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적을 제거한 후 형을 일단 왕위에 앉혀 놓고는 얼마 후 그 자리를 물려받아 3 대 태종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동생들과 외숙들까지 모조리 살육했다.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는 같은 피를 나눈 부모자식이나 형제 사이에도 예외 없이 냉혹하다.
북한의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당했다. 추정컨대 북한의 소행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모양새다. 시아버지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며느리 성혜림과 김정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실제 백두혈통의 장자였던 셈이니 김정은에게는 눈의 가시였을 게다. 김정은은 재일동포 무용수 출신 고영희에게서 태어났으니 항간에선 백두혈통이 아니라 후지산 혈통이라고 빈정거리는 말까지 나왔다니 말이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 이어 이제 해외를 떠돌던 김정남까지 암살되면서 다음 타겟으로 그의 아들 김한솔이 위험에 처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백두혈통의 후손으로는 삼촌 김평일 체코 대사만이 남게 됐다.
북한의 김씨 왕조 궁중 잔혹사 막장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 같다.
2017-02-2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