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는 아크람 칸 컴퍼니에 “until the lions”과 엘에이 발레단의“Pushing Dance Boundaries” 현대발레공연을 보았다. 제목부터 참 멋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상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법이 다를 것이다. 즐거움이란 내가 스스로 하고 싶고 그 일을 함므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무용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100의 돈이 생겨 그 돈으로 무엇을 할거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발레공연티켙을 살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식구들은 생일선물로 일 년 치 무용공연티켙을 미리 사서 선물한다. 한 달에 세 네 번 정도는 공연을 보러 간다. 공연 며칠 전부터 인터넷 두들기며 자료를 찾고 사전 지식을 충분히 익히면 일종의 예습을 통해 공연을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집중과 몰입에 시간 가는 줄도 몰라 밤을 꼬박 새운 적도 많다. 안무자가 의도하는 사상을 생각을 알고 나면 나의 삶에 무게가 깊어진거 갖고 뭔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배가 적당히 부른 포만감의 느낌, 주머니가 가득 찬 느낌, 남들과 다르다는 공주의 느낌, 그런 기분 때문에 나는 공연장을 찾는다.
지난주는 두 개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until the lions” 아크람 칸은 말한다. “춤은 내게 유일한 언어이다.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즐기고, 질문을 던지고, 놀라운 우연들을 겪고, 나 자신을 낮추고 또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가며 안무를 한다고…” 인간의 육체로 감정표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깜짝 놀란다. 인도의 카탁과 현대무용의 결합이 강렬하다 못해 섬칫하다. 참 이채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오는 긴장 속에서 일상의 소음 소리가 리듬을 타고…없는 듯한 박자에서 템포를 만들고… 이렇게도 예술이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나는 왜 공연장을 들어서는 순간 원형 무대를 보고 파놉티콘 원형감옥을 생각했을까? 무엇이 연관성이 있었을까? 누가 감시자고 누가 감시를 받는 자일까? 무대 중앙에서 무용수는 춤을 추고 조명 뒤로 반대쪽 객석과 양쪽에는 분명 관객이 앉아있는데 내 눈에는 어둠에 가려 안보인다. 그러나 분명 실체와 느낌은 나에게 다가오는데…. 휴식도 없이 숨소리 하나 안 들리는 한 시간의 공연이 긴장감 속에서 금방 지나가 버렸다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메운 관객들은 어떤 느낌이였을까? 내용을 이해 했을까? 누가 공연자고 누가 관람자인지 모르겠다. 현대발레는 봐도 봐도 참 설명이 어렵고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이해 한것은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2017-10-2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