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편수화기(扁手華技)란 말이 있다. '편작'의 손과 '화타'의 기술이란 뜻으로 명의를 말한다. 두 사람은 모두 신의(神醫)라 불렸다.
'편작'은 기원전 6세기경 전국 시대 사람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내과의사다.
어느 날 괵나라의 태자가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궁에 부름을 받았다.
태자의 안색을 살펴 본 그가 소생시키겠다고 하자 대신과 궁의는 가당치 않다며 공명심을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러자 태자의 몸 구석구석에 이러이러한 증상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궁의가 확인해 보니 사실이 그러했다. 결국 태자는 소생했다. 그제야 대신과 궁의는 머리를 숙이고 죽은 이를 살렸으니 하늘이 내린 손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 라고.
반면에 '화타'는 외과의 대가였다. 그의 활약상은 많은 문헌에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들은 널리 알려졌다. 관우가 군대를 이끌고 적지를 공격하다가 팔에 독화살을 맞았다. 간신히 진지로 되돌아갔지만 상처는 이미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이때 어디선가 누군가 나타나 자신을 의원이라 소개했는데 바로 화타였다. 누구에게나 흠모 받는 관우가 독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우러 왔다는 것이었다. 화타가 누군가? 천하가 다 아는 명의가 아닌가! 관우는 크게 놀라고 몹시 기뻐했다. 화타로부터 살을 찢고 독을 빼내는 끔찍한 시술을 관우는 담담히 바둑을 두며 견뎌냈다. 오히려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창백해졌지만 관우의 안색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두통 증상을 자주 보이던 조조는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명의는 모두 다 불렀지만 아무도 치료하지 못했다. 그런데 중 신하의 소개로 화타가 찾아왔다. 화타는 조조에게 머리를 열고 외과적으로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조조는 화타가 관우를 존경할 뿐 아니라 그를 치료해 준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 많은 조조는 화타가 수술을 핑계 삼아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를 처형했다. 얼마 후 조조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막내아들 조충이 죽자 화타를 죽인 것을 심히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편작과 화타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최근 한국에서는 총상을 입고 사선을 넘어 온 군 환자를 두고 이를 살려낸 의사와 그의 언행을 문제 삼은 정치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공방 때문이다.
이를 보고 있자니 고전이 된 우스갯소리 하나가 떠오른다. 세 사람이 모여 각자 자신의 직업을 자랑하고 있었다. 건축가인 사람이 말했다. '내 직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노아의 방주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아니지. 아담을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으니 벌써 그 때 마취를 이용한 외과술이 있었던 게 아닌가?'마지막으로 정치가가 웃으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들이네. 하느님이 만물을 지으려 할 때 세상이 온통 혼돈 속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누가 그 혼돈을 만들었겠나?'
그러고 보면 작금의 논란은 의사나 노아의 후손은 귀한 생명을 소생시키는 데 충실 하려는 모습을 보인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모자란 조상을 본받아 다시 사회를 혼돈케 하는 판박이가 아닐는지. 인권을 그렇게 중시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그 사병을 그 지경에 이르게 한 이른바 '지상낙원'의 주인에게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애매한 방향에 대고 짖는 꼴이 그렇지 않나 해서 말이다.
정치인과 개의 공통점에 대한 우스갯소리 하나. "앞뒤 안 가리고 마구 덤비다가 힘이 달리면 꼬랑지를 내리고 슬며시 사라진다."
2017-11-2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