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뚱뚱해도 짧은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여자/멋을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노영심이 부른 '희망사항'이란 노래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바라는 요구조건이 한도 끝도 없는 내용이다. 오만과 욕심 때문일까? 그래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란 아내가 모든 것을 다 알기를 바란다. 단 자신의 결함만은 빼고 말이다. 또 아내가 유능한 일꾼이기를 바라면서도 돈 얘기는 할 줄 모르기를 바란다. 어디 그것뿐인가? 자기가 아프거나 마음 상했을 때엔 위로해 줄줄도 아는 손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정작 본인은 아프지도 말고 우울하지도 말아야 하길 바란다. 이건 유난히 이기적인 남자의 소망이 아니라 보통 남자들의 당연한 소망이다'라고.
그래서 그런가. 한 때 미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를 보면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현모양처 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현모양처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똑똑하고 돈 잘 버는 여성을 원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밥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정숙하면서도 예쁘고, 지적이며 겸손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앞에 나서지 않는 여자. 게다가 섹시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얘기.
이것은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며 여자는 소리 내지 말고 살라면서 무엇이든 다 알아서 해내야 하는 전지전능한 여자이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초 이기심이다. 애초부터 암탉은 울지도 않는 걸 몰랐단 말일까? 아니지. 끽소리 하지 말라는 거였겠지.
헌데 오히려 암탉이 상징적인 나라가 있다. 프랑스다. 프랑스를 뜻하는 '골(갈리아)'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다른 의미로 '닭'이다. 해서 중세시대 '골의 닭'은 희망과 믿음을 상징했는데 후에 프랑스국가와 연관되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프랑스 민족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을 통해 용기와 저항 그리고 혁명을 통한 자유를 얻는 용감했는데 특히 암탉이 대표 격이다.
들라쿠르아의 그림에 나오는 가슴을 드러낸 채 깃발을 치켜들고 민중을 이끌며 혁명에 앞장 선 여성, 그녀가 바로 프랑스의 암탉 마리안느이다. 이 후 그녀는 '자유의 여신'으로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프랑스의 여성상으로 공포되면서 삼색기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도 그녀의 분신이 아닐까? 이러한 용감한 여성들의 외침 덕으로 남자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 이제는 많은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점차 굳어져 가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해서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영혼을 장식하는 컬러물감이다/여자가 없으면 남자의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나고/여자로 하여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라고.
그러고 보면'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라고 노래 말미에 붙인 한마디가 심상치 않다.
한마디로 주제 파악하라는 얘기인데 남자 수탉들 아직도 암탉이 어쩌고 하다간 오히려 큰 코 다치는 시대가 된 것을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그러니 요새 못된 제 버릇 남 못주는 고위층 수탉들이 줄줄이 큰코다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여성을 무슨 제 욕망의 제물인양 함부로 수작 부리던 수탉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한 암탉 마리안느의 후손들이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누가 그랬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고.
2017-12-1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