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요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정치인이나 기업인, 특히 '미투'캠페인 여파로 망신창이가 되고 있는 문화계 등에서 유명 인사들의 해명과 사과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허나 하나같이 그럴싸해 들리는 말로 포장했지만 진정한 사과가 아닌 냄새가 나는 게 나만의 느낌일까? 더구나 사과를 한다면서 구차한 변명으로 오히려 화를 더 키우기도 하니 이 또한 어쩌랴. 이를 바라보는 사람마저 불편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드니 말이다.
이러한 와중에 '유병재식 사과문 해석법'이란 게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수년전 유병재 방송작가 겸 방송인이 "TV 시청과 다년간의 연구로 공적 영역에서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면서 "이것이 앞으로의 공식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자신의 SNS에 올린 내용이다.
한마디로 각종 공개 사과에서 하는 말들의 진짜 속내를 나름대로 해석한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본의 아니게'라는 말은 '예상과는 다르게'드러나는 것을 뜻하는 거고 '사실 여부를 떠나'는 '사실이다'를 인정하는 말하는 거란다. 또 '옳고 그름을 떠나'는 '그르다'는 것을 눈 가린 말이고 '경솔하게 행동한 점'이라는 표현은 '치밀하지 못했던 점'그래서 결국 들통이 났다는 것을 그렇게 에둘러 얘기하는 것이라는 등이다.
가령 '최근 저와 관련된 일들로 여러분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히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잘잘못을 떠나 경솔하게 행동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자숙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하자.
이 말의 속내는 '최근 저와 관련된 일들로 여러분에게 재수 없게 예상과는 다르게 상처를 준 이번 물의는 사실은 내가 저지른 잘못된 짓거리인데 좀 더 치밀하게 했더라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 그만 이렇게 드러나게 된 마당에 한 두어 달 정도 쉬면 잊히겠죠?'라는 거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누구에게나 수긍이 갈만한 통렬한 비판이랄 수 있다. 헌데 근자엔 이 해석법에 하나가 더 추가될 놀랄 일이 벌어졌다.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한 연출가가 사과 기자회견 전 리허설까지 했다는 폭로다.
예상 질문과 답변은 물론 불쌍한 표정 관리에 자세 연기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거다. 불쌍한 표정을 짓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반성하고 잠긴 듯한 목소리 이 모두가 사전에 연출된 것이라니 아연실색할 일!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 연극을 연출했다하니 수많은 리허설이 몸에 너무 밴 탓에 이번 사태도 본질의 심각성 보다는 하나의 지나가는 작품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서다.
아무튼 이를 유병재 방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그가 미리 연습하고 익힌 '불쌍한 표정'은 '어차피 인생은 연극인데 뭐가 문제인데?'하며 '이만하면 잘했지?'그리고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로 읽힌다는 거다.
하지만 본 막을 올리기 전의 리허설이야 몇 번이고 다시 수정할 수 있으련만 이번 공연(?)은 한번으로 끝났고 만사 거짓으로 들통까지 났으니 이 또한 어쩌랴. 전례 없는 완전 흥행실패라고나 할까?
2018-03-0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