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움직임으로 가려져 관심에서 멀어졌던 월드컵 열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축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스포츠도 축구만큼 전 지구촌의 열광과 영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전쟁의 속성과도 닮았으며 또 정치성까지 띄고 있다. 우리가 대표선수들을 태극전사라 부르는 걸 만 봐도 알 수 있다. 해서 '축구의 사회학'이란 책을 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의 리처드 줄리아노티 교수는 '축구는 국가 간 경합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 했는가 하면, '축구 전쟁의 역사'를 쓴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국가 간 대리전쟁'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실례로 네덜란드는 독일이나 스페인과의 경기에 목숨을 건다. 이는 네덜란드가 과거 스페인의 속령에서 독립전쟁을 치른 역사가 있고 또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에 점령당했던 치욕이 있어 이러한 아픈 과거사를 설욕하려는 무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란 거다.
마치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처럼 각 나라들마다 앙숙이 있어 경기를 치를 때면 그 치열한 반응이 나온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100년 전쟁으로 불리는 장미전쟁 때문에 앙숙이 됐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연패 끝에 맥없이 탈락한 것이다. 이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전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월드컵 출전 차 스페인에 와서 알게 되자 심리적 충격으로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두 나라는 당연히 앙숙이 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은 단지 앙숙인 나라들의 치열한 경쟁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를 넘어 전쟁으로까지 번진 적도 있다는 거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의 지역 예선에서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경기 중에 국민감정으로 인한 난투극이 진짜 전쟁으로 비화돼 4,000 여 명의 병사들이 사망한 것이 그 한 예다.
하지만 축구가 반대로 전쟁을 멈추게 한 일도 있었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종교 간의 갈등으로 5년 간 내전 중이었다. 이곳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드로그바는 2006년 코트디부아르가 최초의 월드컵 티켓을 따낸 후 조국을 위해‘적어도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달라‘고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그러자 이에 감동을 받은 정부군과 반군은 실제로 1주일 총성을 멈추었다. 해서 그는 '전쟁을 멈춘 사나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던 거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를 배제하고라도 축구의 백미는 역시 이변의 속출이다. 이번에 멕시코가 독일을 꺾었는가 하면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남미를 이기는 등 이변들이 그런 것들이다.
주최국 러시아 역시 비록 우루과이에 지긴 했지만 사우디와의 첫 승리에 이어 이집트를 누르고 16강에 나섰다. 이를 두고 러시아 인들은 자국을 지켜주는 영웅의 혼 덕분으로 여긴다고 한다. 세계적 골키퍼의 신이라 불리는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이다.
동서진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부터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눈을 감은 지 28년 만에 그의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어른거리는 그의 그림자가 바로 그것이다. FIFA는 골키퍼로 전무후한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그의 업적을 기려 1994년 미국 월드컵부터 최우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상을 야신상(현재 골든글러브상)으로 이름 지었다. 아무튼 축구공은 둥글고 아직도 희망은 남아있다.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빈다.
2018-06-2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