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의 한 우편물 집배원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담당 배달 구역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한 고별 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근 20여 년간 집배원으로 일 해온 한국계 미국인 최일수 씨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최 씨가 지난달 말 주민들에게 직접 배달한 이 고별 편지가 이민의 나라 미국, 그 중에서도 특히 이민자가 많은 뉴욕에서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 주민은 그가 '늘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고 실수 한번 없이 우편물을 잘 배달했는데 이제 그만 둔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울먹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고별 편지에서 그가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만나고 알게 된 수취인 중에는 억만장자도 있었고, TV 유명 앵커는 물론 외교관, 의사, 교수도 많았다고 했다. 또한 거리의 노숙자도 만났는데 이들 모두가 자신에게는 친구였고 깨달음을 준 멘토였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함 그리고 감사를 배웠다고 술회했다.
1982년 군 제대 후 서울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하다 만난 지금의 부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도미 후 연방 우정국에 들어간 뒤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우편집배원이 됐다. 이 후 20여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주민들에게 편지와 소포를 배달하면서 검었던 그의 머리는 어느덧 회색빛으로 변했다.
가족소개로 부인과 외동딸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부인은 오랫동안 네일 샵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는데 그녀가 주로 집 페이먼트를 담당했으니 당연 그 집의 4분의 3은 그녀 몫이란다. 그리고 코네티컷 소재 교회에서 사목을 하고 있는 딸은 자기가 쓰고 있는 이 편지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여기 저기 영문법들을 수정해 주었단다.
이러한 많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그는 편지 말미에 "이 땅에서, 이 도시에서 여러분을 만나면서 내 삶의 풍요로움을 배웠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고별인사를 했다.
문득 이 기사를 보면서 이탈리아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성장을 담은 한 폭의 시와 같은 영화 '일 포스티노(포스트 맨)'이다. 칠레의 로맨틱 시인 네루다가 정치적 망명으로 이탈리아 작은 섬 칼라 디소토 섬에 온다. 이 때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지만 고기 잡는 일을 싫어하는 마리오는 우편 배달부가 되고 이를 계기로 그에게 우편물을 전해 주면서 둘 사이는 가까워지고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면서 네루다를 통해 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내적으로 점차 성장해 간다.
망명이 끝난 네루다가 칠레로 돌아간 후 마리오는 그를 만난 덕분에 알게 된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녹음을 한다. 파도 소리, 별빛 소리, 교회의 종소리, 바람소리 등.
그러고 보면 최일수 씨 경우 고별 편지 형식을 취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이 둘은 우편 집배원 생활에서 깨닫게 된 세상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사람들에게 전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2018-08-2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