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때 영국은 자기편의 불리한 전세가 적에게 알려질까 봐 바른 보도는 모두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신문사만은 연합군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숨김없이 파헤쳐 보도했다.
그러자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이 신문이 적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에 광장에 신문 더미를 쌓아놓고 불사르고 비난을 퍼부으며 신문사 사장을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이 광경을 신문사 사장은 자신의 방 창가에서 비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데일리 메일이었다. 사장은 노스클리프. 그럼에도 데일리 메일은 한결 같이 펜을 꺾지 않고 계속 진실만을 보도했다. 마침내 국민은 진실을 알게 되고 정부도 정책을 바꾼 결과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게 됐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데일리 메일 신문 때문에 졌다.'고.
이렇듯 언론의 영향은 엄청나고 그 힘이 막강하여 제4부 기관이라고도 불리지만 그럼에도 그 빛을 발하기 위한 투쟁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이를 잘 말해주는 영화 한편이 있다. 지난 해 나온 '더 포스트'다. 월남전 극비 문서 보도를 둘러싸고 닉슨 정부와 신문사간의 대결을 그린 실화다. 뉴욕 타임스가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월남전 관련 사실을 국민에게 속여 왔다는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특종 보도를 내자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힌다. 그러자 법원이 국익을 내세워 신문사에 제동을 건다.
이 때 경쟁지 워싱턴포스트 조차 독자적으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뉴욕 타임즈에 동조해 준다. 신문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를 위기였지만 사활을 걸고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이야기다.
헌데 지난 달 16일 이에 못지않은 사상 초유의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여러 신문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 공격을 비판하는 사설을 일제히 실은 것이다. 무려 350 여 개 사가 동참한 이른바 사설연대다. 트럼프가 '언론은 국민의 적'이라는 공격에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로 맞서는 반격이었다.
사설(社說)은 특정 현안에 대해 언론사의 주장이나 의견을 담아낸 논설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얼굴이다. 그러니 다른 경쟁사와의 '사설 연대'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이러한 일이 벌어진 거다.
트럼프는 그 동안 '가짜 뉴스 CNN''망해가는 뉴욕 타임스' '저널리즘의 수치 워싱턴포스트'이라는 막말로 언론을 공격하며 전쟁을 벌이는 듯 했다. 그를 둘러싼 뉴스들은 대부분 백악관 전직 참모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들은 모두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면서 사실인 보도까지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영국에서는 언론인을 한 때 머큐리라고 불렀다. 머큐리스트는 로마신화 주피터의 심부름꾼으로 말하자면 권력자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인데 오늘날 신문은 단지 심부름꾼만은 아니다. 기업은 사주의 것이겠지만 공공성은 일반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 '더 포스트'에는 나오는 대사,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거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을 비판하는 대통령에 맞서 사설 연대를 결의한 것은 저널리즘 역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미 언론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2018-09-04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