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만에서 LA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한 임산부의 양수가 터졌다. 그러자 대만 국적의 이 임산부는 그 경황 중에도 '비행기가 미국영공에 들어섰는가?'부터 승무원에게 물었다. 다행히 승객 중 의사가 있어 알래스카 상공에서 무사히 딸을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원정 출산을 위해 처음부터 임신 기간을 속이고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들통이 나 항공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허나 그게 무슨 대수랴. 어쨌든 딸에게 미국국적을 갖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원정출산으로 인한 소위 속지주의 출생시민권의 한 예다.
문제의 출생시민권은 역사적으로 노예제도에서 시작되었다. 1799년 버지니아에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흑인 남성 드레드 스콧은 주인 에머슨 박사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던 중 노예자유주인 일리노이에서 위스콘신으로 이주했는데 여기서 노예 신분이었던 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그러다가 에머슨 박사가 사망하자 스콧은 자신과 가족의 해방을 위해 소송을 냈다. 자신과 부인이 노예제가 없는 자유주에 거주했으며 딸도 자유주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들어 자유권을 주장한 거다. 하지만 스콧은 하급법원에서 패소하고 다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방대법원으로 갔다. 헌데 연방대법원은 '흑인 노예는 재산일 뿐 절대 자유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857년 그 유명한 '드레드 스콧 사건'이다.
이 판결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북군이 승리한 후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도를 폐지했지만 흑인 노예들을 미국 시민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결국 의회는 1865년 수정헌법 13조를 통해 노예제를 폐지하고 3년 뒤 수정헌법 14조를 통해 미국 내 출생자 시민권의 범위를 확대했다. 앞선 기존 판결을 무효화 한 것이다. 1868년의 일이다.
이러한 흑인 시민권의 역사로 만들어진 수정헌법 제14조는 이후 미국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도 적용되어 왔다. 1898년 중국인 입국이 금지된 법이 시행되던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중국국적 부부의 아이에게 출생시민권을 인정하는 판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다가 미등록 이민자 자녀에 대한 판결도 1982년 텍사스에서 나오기에 이르렀다.
대선후보 때부터 출생시민권을 못마땅해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이를 폐지하려고 나섰다. '미국에 와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고 그에 따른 모든 혜택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이를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소위 속말로 이르는 '앵커 베이비(anchor baby)'는 이유야 어쨌든 엄연히 합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수정헌법 14조의 한 조항에 의해서다. '미합중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한 사람 그리고 그곳의 사법 관할권에 속하게 된 모든 사람은 미합중국의 시민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라고 한 것.
헌데 여기서 문제는 '그곳의 사법 관할권에 속하게 된"이란 문구의 해석으로 시시비비 논쟁이 끊이질 않는 거다. 이를 합법적 거주민의 자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냐 아니면 불법적인 거주자의 자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가 하는 것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보수 측 인사들은 "헌법 개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정명령으로 철폐한다는 것은 위헌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미국 헌법개정은 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귀추가 주목된다.
2018-11-1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