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하면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다가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 고된 일이었습니다.
임금이 직접 내린 업무지침서인 사목에 보면 '到南大門外開坼'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숭례문을 나가서 한양을 떠나기 전까지 지침서를 열어보지 못하고 감찰지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신분을 감추고 사람들 속에 숨어서 감찰을 해야 했습니다. 감찰 대상인 지방 관리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는 날이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사람은 암행어사 시절 자신들이 처벌한 관리들에게 보복을 당하고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암행어서는 백성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가감 없이 전하는 임금의 눈과 귀가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설움과 굶주린 사람들의 고통을 직접 살피기도 했습니다. 1822년 평안남도에 파견된 암행어사 박내겸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청으로 들어가 굶주린 자들을 구하기 위한 죽사발을 받아들였다." 진정한 지도자는 이와 같이 어려운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헤아림은 나라의 지도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대할 때에도 이러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아픔과 고통가운데 있는 이웃에 대해서 암행어사에게 필요한 헤아림의 자세로 살았으면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아닌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시대적 암행어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9-01-1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