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음력설이 주는 느낌은 사람에 따라, 가정에 따라 한국에서와는 사뭇 다를 수 있을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설'이라 하면 왠지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설'이라 하는 걸까?
한국인이면 누구나 어렸을 때 불러 본 노래가 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라는 노래다. '반달' 노래로 유명한 동요작가 윤극영 선생이 만든 이 노래에서 '까치 설날'은 섣달 그믐날이고 '우리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라는 가사는 노래 이상의 의미를 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와 신라에 이미 설 맞이 행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설을 4대 명절로 여길 정도로 성대히 치렀다. 그러던 '설'이 수난을 맞은 것은 일제강점기다.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국민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며 민족정신을 더욱 깊이 생각하는 날로 지키자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은 물론 전통까지 말살하기 위해 전통적인 우리의 '설'마저 없애려 한 거다.
일제는 일찍이 메이지 유신체제에서 일왕 숭배 중심의 근대화를 위해 그들 자신의 전통 음력명절 조차 없애고 대신 일왕 생일을 비롯해서 양력 명절들을 정했다. 헌데 이를 식민지 조선에까지 도입하고는 양력설을 강요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굴복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다.
윤극영 선생의 설 노래도 이 때 만들어졌다. 우리 노래를 잃고 일본 노래만 부르고 있던 어린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전통과 역사성을 지닌 '설'은 해방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양력설에 밀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1989년이 되서야 비로소 전통고유의 '설'로써 이름을 되찾고 3일간 공휴일로 정해지게 됐다.
'설'이란 말은 새해가 시작하는 첫날이 지난해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낯설다'해서 비롯됐다 한다.
헌데 까치 설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고구려 신화다. 고구려에서는 세발 달린 까마귀를 삼족오라 해서 태양을 의미하는 영물로 여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까마귀를 불길하다고 여기면서 길조의 상징인 까치로 대신했다는 설이다.
여기에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에 의하면 예전에는 설 전날을 '아치설'이라고 불렀던 것이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뀐 것이 동요 가사에 사용됐을 거라는 추론이다. '아치'는 순 우리말로 작다는 의미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동요 속의 '까치'는 어제의 작은 설, 일제에 갇힌 어둠을 밀어내고 오늘의 큰 설, 우리의 밝은 새 날의 해방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염원의 상징이며, 반가움의 등불이었던 셈이다.
올해는 3·1운동 발생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로 설 맞이가 여느 해와 다르다. 허나 아직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위 열강들의 세력 그림자가 어둡게 깃들고 있는 지금, 전에 새날을 갈망하며 부르고 또 불렀듯이 오늘도 까치의 노래는 그 울림이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2019-02-05 00:00:00